'촛불집회'에 해당되는 글 14건
- 2008/07/08 촛불을 드는 것, 혹은 관찰하기 (2)
- 2008/06/29 과격 폭력 진압 관련 대정부 단독담화문
- 2008/06/17 2MB 요정설에 대한 신뢰도 대폭 증가 (2)
- 2008/06/12 "'분노의 촛불' 워싱턴포스트,뉴욕타임스 1면 톱 게재" (1)
- 2008/06/10 결전의 날
- 2008/06/08 '폭력시위' 에 대한 일련의 반응에 대한 단상 (6)
- 2008/06/06 노파심
- 2008/06/03 2MB의 화려한 주말...20년 전으로의 시간여행 (4)
- 2008/06/01 올나잇 데모 후기 (2)
- 2008/05/21 진중권, 정태인 강연회 (1)
현재 촛불 정국에서 상당히 우려스러운 점은,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기초적인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객관성을 외치며 촛불에 대해 온갖 논평을 쏟아내는 지식인들과 상당수의 시민들을 보고 있자면 이들이 집단적인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은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현대 사회에서 관찰자와 행위자를 엄격하게 분류하려는 시도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자신을 객관적인 관찰자에 한정 지으려는 이들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사회인이라면 무릇 자신의 행동에 대한 유무형의 사회적 책임이 따르는 만큼 그들이 행동에 섣불리 나서지 않는 것에 대해 크게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래도 잃을 것은 시간이요 얻을 것은 사명감뿐인 학생이 이미 가족과 사회적 위치를 가지고 있는 사회인들에게 정의를 위해 소유를 내려놓으라며 윽박을 지르는 것은 설득력도 없을뿐더러 썩 보기 좋은 모양새도 아니다. 하워드 진의 말마따나 이는 성숙하지 못한 행위이며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행위도 아니다. 21세기 한국에서 누가 아도르노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문제는 '편향적' 인 행위자와 스스로 구분을 지으며 '객관적' 인 관찰자를 자처하는 목소리들이다. 이러한 목소리는 그 파급력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수구세력의 신성동맹이 내는 반동적 목소리에 비해 훨씬 위험하다. 후자가 우익 특유의 무지막지함과 정서과잉으로 인해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진지하게 경청할 가치가 없는 코미디로 수용된다면 전자는 세련된 외양을 무기로 공론의 영역에 성공적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이 목소리들은 목소리 자체로 현실을 재창조한다. 현재 촛불정국에 대한 여론은 집회에 직접 참여한 시민들의 열정적인 체험담 외에도 수많은 관찰자들의 목소리 또한 가미되어 움직이고 있으며, 이 '여론' 은 촛불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행위를 하지 않는 관찰자들은 무엇을 관찰하여 목소리를 내는 것일까? 이들이 촛불집회의 모든 순간에 현장을 지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가장 열성적인 참여자에게도 힘든 일이다. 이들의 목소리는 몇 번의 참여에 따른 단편적인 인상 혹은 언론 보도 내용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물론 현장의 최전방에 있던 자만이 사건에 대해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보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맥락을 스스로 재구성 해보는 정도의 책임감은 가지는 것이 올바른 자세이다. 책임감 없이 단편적 이미지에 휩쓸려 아우성을 낸다면 그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특히 반동적 언론에서 주어진 이미지에 휩쓸리는 목소리들은 가장 위험하다. 이들 언론의 보도만 보자면 현재의 촛불 정국은 바스티유를 함락하고 귀족들을 학살하는 혁명의 상황에 가깝다. 전경을 집단 구타하고 인민재판을 하는 혁명적 상황에 대한 목소리는 혁명에 열광하는 목소리와 혁명에 반대하는 그것으로 양분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의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란 대부분의 관찰자들은(행위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유혈 혁명에는 생래적 거부감을 지니고 있기에 촛불 정국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이것이 반동적 언론들의 전략이자 '객관적' 관찰자들의 한계이다. 이들의 폭력비판은 공허하다.
근본주의적 폭력비판은 실질적으로 소용이 없다. 기껏해야 전경과 시민 모두 잘못하였다는 무의미한 양비론으로 빠지거나 '누가 먼저 때렸나' 라는 검증 불가능한 기술적 문제로 환원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는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검증이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찰자들은 '폭력적' 이고 '비이성적' 인 행위자들과 자신들을 대비시키며 '비폭력' 과 '이성' 의 영역에서 훈수를 둔다. 반동적 목소리들은 훈수의 재료를 제공한 뒤 터져 나오는 관찰자들의 세련된 훈수 뒤에 자신들의 무지막지한 주장을 숨긴다. 그리고 훈수가 행위자들의 열기를 조금이나마 잠재웠을 때, 이들의 무지막지한 주장은 비수가 되어 관찰자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행위자들을 찌른다. '일반시민' 들인 관찰자의 이름으로.
여기에 관찰자들의 비극이 있다. 이들은 순수하다. 시민에 대한 전경의 폭력과 전경에 대한 시민의 폭력 양쪽 모두에 분노하며 노무현의 악덕만큼이나 2MB의 악덕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노무현 정부 시절이나 2MB 정권 시절이나 '운동권' 들에 대한 강경진압에 무감각한 것 역시 마찬가지지만). 그렇지만 사진예술이 태동하던 시기를 살았던 독일의 비평가 발터 벤야민이 이미 예리하게 꿰뚫어 보았듯, 맥락이 거세된 단편적 이미지는 이들의 순수함을 자신들의 특수이익을 위한 자원으로 만들며 농락한다. 벤야민은 비판정신을 마비시키는 사진의 순간적 이미지에 대한 보완책으로서 표제를 제시하였지만 이미 반동적 언론들은 자신들만의 맥락이 존재하는 세계를 창조하였고 그 세계 안에서 자유자제로 표제를 붙여낸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의 세계 안에서, 이들의 표제는 사진의 '진실' 을 가장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의도적으로 왜곡된 기사와 사진 이미지들로 구성된 반동적 언론의 매트릭스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더 이상 순수한 렌즈로 관찰을 하기가 힘들게 된다. 직접 촛불 집회에 나오더라도 그것은 어수선한 집단 객기쯤으로 비추어질 것이다. 그 시각은 더 이상 '객관적' 이지 않다. 아마 전쟁터에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관찰자를 자처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진영논리가 작용하는 현실 정치 영역의 권력 게임에서 객관적인 관찰자는 존재하기 힘들다. 행위자 혹은 자원만이 있을 뿐이다. 직접 거리에 나서는 것만이 행위는 아니다. '과격 행위자' 와 '부정적 시선으로 관망하는 시민' 의 형태로 가공되어 나타나는, 행위자와 관찰자라는 고전적인 이분법적 인식을 깨뜨리고 행위의 의미를 이해하고 관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신중하고 올바른 관찰은 그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사회참여 행위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맑스의 관찰이 없었더라면 그 많은 변혁운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관찰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주며 또 다른 길을 탐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준다. 이에 반해 순간적 이미지에 휩쓸려 감정적 분노를 발산하는 것은 '객관적 관찰' 과는 거리가 멀며 어떠한 것도 생산해낼 수 없다. 행위자들과 애초에 선을 긋고 무책임한 논평, 아니 감정의 배설을 쏟아내는 관찰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자기성취적 예언임을 알지 못한다. 이들의 목소리는 촛불 정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지식인들이 신중을 기해 말한 방향제시와도 전혀 성격이 다르다.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그것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 허공을 맴돈다면 관찰자들의 목소리는 관찰자 그룹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유통이 되며 스스로를 확대재생산한다. 그리고 반동적 언론은 그들의 목소리를 시민 대다수의 의견으로 포장하며 또 다시 관찰자들은 그러한 보도에서 '판세' 를 읽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그에 맞춘다.
거리에 나올 용기와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고 판단할 책임감 중 어느쪽도 갖추지 않은 채 '쿨' 한 척만을 하는 관찰자들에 의해 영향을 받아 만들어질 미래는 역시 차가운 미래일 것이다. 그들의 말대로 현재의 촛불 정국은 확실히 87년 6월과는 다르다. 하지만 87년 대선과 같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양자를 택일해야 하는 양자역학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변화 역시 순수한 선과 변혁을 동시에 취할 수는 없다. 그리고 2MB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을 보았을 때 '관찰자' 들의 상당수는 최소한 순수한 선을 택할 완고한 도덕주의자들은 아닌 것 같다. 애초에 코를 틀어막고 2MB에게 투표를 하였다면 변혁을 위해 촛불의 몇 가지 소소한 악덕쯤은 감수하고 다시 한 번 코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굴러가는 역사의 수레바퀴 앞에서도 '나는 찍지 않았습니다' 를 무기력하게 외칠 것인가.
프레시안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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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원본 대국민 '협박문' 부터 감상을 하자.
http://www.frontiertimes.co.kr/news_view.html?s=FR01&no=28791&s_id=9&ss_id=0
자작 대정부 단독담화문
존경이 되지 않는 2MB 일당들!
어제 저녁, 또 다시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과격 폭력 진압이 벌어져 시민과 경찰 양쪽에서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일부 전경이 곤봉과 방패로 시민들을 무차별 폭행하고 빈 소화기통과 보도블럭까지 시민들에게 던져댔다. 나아가 쓰러진 여성을 발로 마구 밟는 일까지 발생했다. 참으로 걱정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이러한 불상사가 발생한 데 대해 깊은 분노의 뜻을 표하며,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끌려나와 부상을 당한 전의경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시민들은 그 동안 최대한 평화적인 방법으로 재협상을 주장하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한때 2MB는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경청하는 척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부의 태도 역시 2MB의 사과문과는 상당히 달라지고 있다. 쇠고기 문제 뿐만이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위험한 정책들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강행하려 하고 있다. 경찰의 진압 양상도 날이 갈수록 과격 폭력화 되고 있다.
또한 한나라당은 오늘 일요일, 개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정치적 성명을 발표하고,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가기 위한 후안무치한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친애하고 싶지 않은 2MB 일당들!
그 동안 시민들은 정부에 대해 정부의 자정능력을 믿는다는 차원에서 평화적인 집회를 위해 노력하며 인내를 갖고 정권퇴진 운동을 최대한 자제해 왔다.
그러나 잠시 고개를 숙였던 정부가 고소영 강부자 주도의 MB노믹스의 강행, 80년대식 진압을 다시 꺼내들면서 급기야 어젯밤과 같은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이러한 사태가 재발한다면, 시위에 참여한 일반시민들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사태는 절대로 막아야 한다. 시민들로서는 불법 폭력 과격 진압에 의한 불행한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불가피하게 소화전을 이용하는 등 정당방위 차원의 자위책을 강구할 수 밖에 없다.
또한 과격 폭력진압을 조장 선동하거나 극력 폭력행위자에 대해서는 끝까지 기록, 추적해 국민의 심판을 내릴 방침이다. 파괴된 방송장비 등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는 민사상의 손해배상도 청구하겠다. 아울러, 한나라당의 망발에 대해서도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다.
2MB 일당들!
이번 시위와 관련해 전의경들의 부모이자 친구인 시민들이 밤낮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젯밤에도 수백명이 넘는 시민들이 부상을 당했고, 이 중 상당수가 중상을 입었다.
지금까지 부상당한 시민들은 총 천여명에 달하고 있다. 10개가 넘는 농성천막과 140여 점의 농성장비도 파손됐다.
2MB의 집권이 네 달이나 계속되면서 자영업은 물론 우리 경제 전체에도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다. 국가신인도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외국 투자자와 관광객들도 발길을 돌리고 있다.
전 세계가 유가급등으로 위기에 몰려있고, 특히 우리 경제도 어려운 상황에서 2MB가 대통령으로 있을 경우 누가 우리나라에 믿고 투자하겠습니까?
2MB의 집권은 서민경제를 죽이는 일이고, 그 피해는 묵묵하게 일하고 있는 대다수 시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더구나 이런 현실은 아직까지도 시민들께 정확히 전달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때일수록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균형있는 보도가 필요하다. 정확한 정보들이 시민들께 전달될 수 있도록 조중동의 회개를 당부드린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는 시민들의 고충에도 관심을 갖고 보도해 주실 것을 거듭 요청드린다.
또한 한나라당도 개념없는 성명서를 철회하고, 미 쇠고기 재협상을 즉각 당론으로 정하기 바란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민의를 대변하여야 할 국회의원들 중 일부가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친애하고 싶지 않은 2MB 일당들!
이제는 우리 모두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발전 시키는 데 역량을 모아나가야 할 때다. 국민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가운데 정책을 수행하는 성숙한 국가 운영역량을 보여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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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B 요정설이란?
사실 예전에 쓴 글(2MB 탄핵에 대한 단상)에 나타나 있다시피 나는 5월 초만 하더라도 촛불문화제의 가능성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었다. 대운하나 공공부분 민영화 등 한국의 중장기적 사회경제적 체제 자체를 뒤엎을 수 있는, 산적한 거대 이슈들을 놓아두고 그 확률도 매우 미미한 광우병 이슈에 들불처럼 일어나는 대중을 보며 어느정도는 냉소를 보내었던 것도 사실이다.
대선을 거쳐 4월달의 총선 패배를 겪고 나니-게다가 내가 선거운동을 뛰었던 후보 사무실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패배를 목도하였다- 한국의 대중에 대한 실망과 불신감이 팽배해 있던 시기였다는 말로 미약한 변명을 해본다.
여하튼, 내가 미심쩍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촛불문화제에 모인 시민들은 나에게 멋지게 어퍼컷을 날렸고, 나는 5월 2일 이후로 꾸준히 촛불문화제와 가두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기말고사와 논문을 쓰느라 바뻐 촛불시위 출석이 뜸해진 요새 와서 생각해보건데 2MB 요정설은 통찰력이 있는 주장인 것 같다.
기억해보자. 촛불이 시들할때마다 여기에 불을 부은 것은 시민들의 열정과 아이디어 이전에 2MB 의 삽질이었다. 지속적으로 부어주는 배후설과 간간히 터뜨려주는 돌출 발언, 그리고 강경 진압은 그만큼의 강한 반발을 수반하였고 이 반발은 고스란히 촛불의 기름이 되었다.
촛불시위가 가두로 나올 수 있도록 계속 귀를 막은채 먹사들과 대화하던 2MB는 시위대가 가두로 나와 논란이 될 법한 시기에 25일 신촌의 진압 크리를 날려줌으로 가두시위에 대한 비난여론을 잠재우며 시위대의 상황판단능력 역시 대폭 증가시켜 주었다.
그리고 6월 1일, 피의 일요일은 2MB가 국민의 정치의식을 일깨우고 함양시키기 위한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깨달은, 절대정신의 각성 기념일로 지정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의 '지령' 이 떨어지자마자 아고라의 노빠들이 청와대 진격 무용설을 주장하기 시작하였는데, 최소한 그 전까지는 청와대 진격이라는 행위의 부적절성보다는 경찰의 폭력진압이 주요 이슈였다.
또한 촛불의 중요한 고비였던 6월 7일 저녁, 프락치 논란까지 있던 폭력사태에 대한 목소리가 일파만파 확산되기 시작하여 6월 10일 시위의 성공 여부가 불투명해지던 시기에 2MB는 명박산성이라는 기상천외한 아이템으로 벼락치기 인력동원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아마 명박산성을 보고 온 사람들이 최소한 몇만명은 될게다. 명박산성과 더불어 81년생 북파공작원이 존재하는 가짜 HID 는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내는 데에 톡톡히 기여하였다.
결국 명박산성의 가호로 6월 10일 시위를 어느정도 성공적으로 치루어내었지만 청와대의 리액션도 미적지근한 데다가 추후의 뚜렷한 목표가 정해지지 않아 지쳐가던 시민들. 하지만 역시 우리의 2MB 요정은 시민들이 지쳐가는 것을 눈뜨고 볼 수가 없어 LPG 가스통과 함께 고엽제 전우회를 여의도에 파견하사 시민들이 오랜만에 운동도 할 겸 운치있게 야경을 보며 한강을 걸어서 건너는 체험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제 곧 장마철이다. 일기예보를 보니 내일부터 비가 온다는데, 비가 내리기 전부터 2MB 요정은 역시 세심한 배려를 해주었다. 오늘은 길고 긴 장마철을 맞이하여 3종 세트이다. 오전에는 김종훈의 옥쇄 크리, 오후에는 이랜드 홈에버(신실한 박성수가 운영하는 그 이랜드 맞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 하지 말지니....)의 쇠고기 원산지 위조 크리, 밤에는 촛불시위 생중계의 메카 아프리카 TV 대표 긴급구속 크리.
아마 내일 ASEM 회의때 세계 각국의 요인들에게 한국의 위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오늘 하루에 몰아서 일들을 터뜨려 주었나 보다. 대책위 측에서는 2MB에게 20일까지 기한을 주었는데 과연 20일 당일날에는 또 무엇을 하사해 주실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노무현 시절, 민주주의보다 경제성장을 택하였던 괘씸한 시민들에게 몸소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체험시켜주는 2MB 요정의 국가와 시민에 대한 배려와 사랑 앞에서 나와 같은 룸펜은 그저 조용히 그분의 희망에 따라 시위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것 밖에 할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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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공고화 되었고 보편의 가치가 된 사회에 살고 있는-물론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서구인들의 눈으로 보자면 민주주의 혁명은 일종의 '로망' 에 가깝다. 얼마전 사학법 및 종교인 과세 논란이 벌어졌을 때 광신도들이 벌이던 '순교' 퍼포먼스와 같은 맥락선상에 닿아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개신교인들이 신화의 영역에 있는 사도들의 순교에서 뜨거움을 느꼈다면 '민주주의 신도'(비꼬는 의미는 아니다) 가 된 서구인들은 역시 신화가 되어버린, 자유와 평등을 위한 투쟁에서 뜨거움을 느낀다.
87년 6월 항쟁의 열정을 경험적 차원에서 되살리던 한국의 386세대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서구인들은 한국의 '민주화 운동' 을 신화의 차원에서 소비한다. 그의 업적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구에서 그렇게 대접을 받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라파예트와 제퍼슨을 방불케 하는 민주주의 혁명 신화의 살아있는 주인공이였던 것이다.
결국 서구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산업화' 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 과 '야생의 에너지' 를 읽어내듯, 아시아에서는 '불완전한 민주주의' 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민주주의 혁명' 의 신화를 읽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이러한 소비방법은 역설적으로 이들이 현재 국면을 비교적 정확히 파악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번 시위를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둘러싼 단순한 '반미' 차원에서의 운동으로 보는 것이 아닌, 2MB 정부의 정책방향과 독선적 국정운영에 대한 총체적인 거부로서 서술하고 있는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배후설을 운운하는 조중동의 기사보다 훨씬 정확하다. '반정부'(조중동은 2MB 정부에 대한 반대와 정부라는 체제 일반에 대한 거부를 구분하지 않고 쓰는 악습이 있다) 혹은 '반미' 가 아니라 '민주' 의 문제이다.
그렇기에 민주주의가 내면에 공고화되지 않은 국내 파시즘 언론들(우파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보다 해외 언론의 민주주의에 대한 로망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역설이 발생한다. 외신을 보는 것은 제 3자의 시각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객관화하여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 그 장점이 있긴 하지만, 우리의 펜이 아닌 푸른 눈 속에서 우리의 실체를 보아야 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뉴욕타임스에서 발췌-
For the past 40 days, central Seoul has been rocked by demonstrations , which began as rallies by hundreds of teenage students, singing, dancing and holding candles to protest the importing of American beef. They have now evolved into a protest against government policies on education, health care and consumer pr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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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전의 날, 6월 10일이 밝았다. 3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일어나 학교에 있다가 시위에 참가할 계획인데,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이며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어제 최장집 교수가 인터뷰에서 말했다시피 이 정제되지 않은 열정을 제도화해주고 지속시켜 줄 정당이 부재한 현실에서 통제가 불가능한 에너지 덩어리가 어느쪽으로 흘러갈 것인가.
일요일의 '폭력시위' 때문에 여론악화를 걱정하였지만 친절하게도 전경은 14세 소년의 뒤통수를 방패로 가격하였고 2MB는 세종로에 컨테이너 공구리를 치고 있다. 5월 초에 간단하게 끝낼 수 있던 문제를 이렇게까지 비화시킨 2MB의 선동능력과 정치력은 이래저래 역사에 남을 듯 하다.
이 판국에서도 시민사회의 원로들-물론 이들이 '지도자' 는 아니지만-을 만날 생각은 하지 않고 뉴라이트를 위시한 '종교계' 인사들을 만나서 시시덕거리고 있는 것을 보면 금치산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쯤되면 네티즌 중에 몇명 뽑아서 대화하는 제스쳐라도 보여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끝까지 분위기 파악 못하고 부시 형님에게 전화를 걸어 형님이 약속 했다고 광고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당선 전의, 공식 외교라인이 아닌 종교계 인맥을 통한 부시와의 면담 추진이 떠오른다. 계엄령 직전의 갑호경계령도 내렸다던데, 사태를 치킨게임으로 만들지 못해 안달이 난 것 같다.
다시 오늘의 과제. 컨테이너 성이 쌓인 세종로에서 우리는 공성전을 할 것인가, 축제를 할 것인가, 이합집산을 할 것인가. 내가 고민한다고 해봐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니 논문이나 쓰다가 저녁에 속편하게 가서 시민들의 흐름에 몸을 맡겨야겠다.
그리고 내일, 세상은 바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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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파심 (0) | 2008/06/06 |
고고한 척 깔끔떨고 뒷짐지고 있으면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릴 일도 없을 것이며 고뇌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자기기만 속에서 완결된 자신의 세계가 깨지지 않는 것은 아마 정말 속편할 것이다.
하지만 루쉰은 말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울지라도 한줌의 빛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그래야 언젠가는 빛을 찾아 밖으로 나갈 수가 있기에.
'촛불문화제' 까지는 정말 고민없이 나올 수 있었다. 전경이 연행을 하지도 않았고 소라광장에 모여 콘서트와 자유발언을 보며 가볍게 2MB를 씹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촛불시위' 가 된 이후로, 그리고 8일 쇠파이프가 등장한 이후로 빠져나가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빠져나가겠다는 '나약함'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강자들만이 투쟁할 수 있는 세상의 구조 자체가 문제일 게다.
그렇지만 자신의 '나약함' 을 수용하거나 인정하지 못한채 거기에 온갖 '멋진' 미사여구-이성, 합리성, 평화-를 가져다 붙이는 것은 그리 좋은 눈으로 바라보기가 힘들다.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히 생각해보자. 나를 진정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가. 모두가 근본적 비폭력을 주장하는 탈근대 전사들인가? 그런 사람들이 이라크 파병할때는 뭘 하고 있었나.
폭력사태가 여론에 미치는 영향을 걱정하는 것과 폭력을 긍정하지 않더라도 시위에 계속 참여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시위의 '순수성' 운운하며 빠지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짜증이 난다.
애초에 민의의 본질이란 것이 있던가? 시민과 운동권의 낡은 이분법에 갇힌 채 자신들의 안전한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자위에는 근거없는 감정적 혐오 이상의 이유가 없다. 생각해보자. '전문 운동권' 들이 작정하고 폭력투쟁 하려고 마음먹고 나왔으면 7일 새벽에 이미 모든 전경버스가 박살났을게다.
자신들이 이미 통합의 제의에 혹해서 참여하였다면, 돌출적으로 나오는 폭력마저도 어떤 방식으로든-말리든 부추기든- 포용할 필요가 있다. 미안하지만 평생 그런식으로 헤게모니에 영합하며 자신의 세계를 부수지 않은채 도피를 하다간 '이성' 의 정점에 오를 수가 없다.
폭력투쟁을 긍정하라는 말이 아니다. 여론에 미치는 영향은 그것대로 고민하고 시위의 대의는 그것대로 고민하고 좀 전략적으로 사고하라는 말이다. '냉철한 이성' 좋아하는 분들이 가장 감정이고 당위적으로 판단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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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메이저캠들이 단체로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8, 90년대의 악습이 반복될 조짐이 보여서 걱정된다. 선도투를 이끄는 서울대와 자신들만의 응원문화로 결속하는 연대와 고대, 그리고 역시 강한 결속력을 자랑하는 이대.응원가를 개사하여 새로운 시대의 민중가요로 만드는 것까지는 바람직 하지만 응원행위 자체가 집회장의 놀이가 되어서는 안된다.
오늘 집회에 참석하여 계속 느낀 불편한 감정의 정체는 이것이였다. 나 역시 메이저캠 소속이긴 하지만 자신들끼리 몰려다니며 타 학교 학생들이 이질감을 느낄 수 있는 응원문화를 반복하는 것은 '영 아니올시다' 이다. 정 그 자리에서도 응원을 하고 싶으면 응원가를 좀 더 그럴듯하게 개사해와서 부르길 추천한다.
여하튼 대학생들이 본격적으로 판에 끼면서 깃발의 숫자도 대폭 늘어났는데 걱정이다. 시위의 '순수한' 목적이 '변질' 되는 것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시위의 대의는 지금까지 계속 자체적으로 진화하여 왔다. 문제는 깃발에 속할 곳이 없는 일반 시민들의 소외와 비메이저캠들의 소외감이다.
대오는 서울대가 지도하고 노래는 연고대가, 구호는 이대가 담당하면 시위할 맛이 나겠는가? 물론 이것은 응원문화와 같은 전체주의 문화에 심한 알레르기가 있는 본인의 편견이 심하게 작용한 기우에 불과할 뿐이다. 아니, 기우여야만 한다.
5월 31일 오후 7시, 예정된 대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문화제가 개최되었고 그 곳에는 이미 오후 4시 반부터 마로니에 공원에서 행진해온 여러 단체들과 시민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필자 역시 친구들과 시청 앞에서 만나 자리를 잡고 앉아 곧 시작한 촛불문화제에 참여하였다.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학회나 진보신당 단위로 참석할까도 생각을 하였지만 2MB의 독선적 행각과 시민들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에 분노하여 나온, 집회경험이라곤 전무한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였기에 계속 친구들과 함께 자리를 지켰다. 팬클럽 경험이 있는 친구들은 10만 명도 넘는 인원이 모였다며 탄성을 질렀고 필자 역시 플라자 호텔과 덕수궁 앞 도로까지 가득 메운 인파를 보며 감탄을 하였다. 깃발을 들고 참여한 단위들도 많았지만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시민의 수가 훨씬 많았다.
프락치 논란으로 격앙된 시민들의 관용과 절제를 당부하는 자유 발언 등이 있고나서 얼마 후 가두 행진이 시작되었고, 평소와는 달리 이 행진은 명동이 아닌 충정로 일대로 진행되었다. 사실 충정로 일대로 진행하는 것을 보며 25일의 악몽이 떠올라 흠칫하기도 하였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촛불의 행렬을 보며 시민들을 믿고 필자 역시 친구들과 함께 계속 행진을 하였다. 시민들은 행진 도중 중앙일보 사옥이 나오자 '중앙일보 폐간하라' 를 연호하였고 경찰청 건물이 나오자 '어청수는 사퇴하라' 를 외치는 재치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필자일행은 처음에는 대열의 선두그룹에 속해 있었지만 잠시 편의점에서 요기를 하다 보니 선두 대열과 떨어져 후미에 있게 되었는데, 갑자기 전경의 포위망이 형성될 수 있으니 뛰자는 소리가 나오는 바람에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일행이 갈라지게 되었다.
전경의 '허리끊기' 를 막기 위해 밀집을 외치며 사직터널을 통과하여 보니-터널을 통과하던 중 구호에 맞추어 경적을 울려주시던 시민분도 계셨다- 전경버스가 사직공원 앞에서 진로를 차단하고 있었고 시위대의 수는 현저히 줄어들어 있었다. 뒤떨어져 있던 일행과 다시 합류하여 사후 대책을 논의하던 중, 차단지점 바로 앞의 갈림길에서 금속노조를 비롯한 노동자 분들의 대열이 등장하여 시민들의 환호를 받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전경들이 물러나 시위대는 전경버스 사이로 빠져나와 계속 행진을 하기 시작하였지만 경복궁역 일대에서 다시 전경들이 등장하여 대열을 가로막았다. 그렇지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나중에 들으니 몸싸움을 통해 저지선을 뚫었다고 한다) 곧 전경들은 빠지고 대열은 효자동으로 밀집하여 경복궁 담을 낀 골목에서 경찰과 대치하게 되었다.
뒤늦게 학회 후배에게 연락을 해보니 어떤 길로 온지는 모르겠지만, 혹은 경복궁 앞의 대열에서 분리하여 나간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삼청동 쪽에서도 동십자각 앞에서 전경과 대치선을 형성하였다는 연락이 왔다. 청와대로 통하는 효자동과 삼청동 양쪽에서 대치가 시작된 것이다. 광화문을 사이에 둔 채 약 500m 의 거리가 있는 양쪽에서 경찰과 대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인원이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2MB의 독선과 폭주에 대한 반감을 지닌 시민들이 많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곧 11시 반이 넘어 지하철이 끊기고 최루탄이 터졌다는 소문이 돌았지만-실제로 소화기를 뿌리기는 하였다- 여전히 시민들은 거리를 메우고 있었고 모두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었다. 필자의 일행 역시 시민들과 함께 효자동 골목에서 '이명박은 물러나라' '비폭력' 등의 구호를 외치며 자리를 지켰다(사실 필자는 지하철이 끊기기 직전에 귀가하려는 생각을 하였지만 오히려 친구들이 잡는 덕분에 이 후기를 쓸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친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큰 충돌 없이 대치가 길어지는 바람에 필자 일행은 긴장이 풀려 대치지점을 유리창을 통해 볼 수 있는 골목에 들어와 앉아 쉬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시간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12시 즈음해서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갑자기 물줄기가 시민들의 머리위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사태라 일행 모두 어안이 벙벙한 채 창 건너편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만 있었는데 곧 중년의 남성 한 분이 우산을 들고 물줄기를 막기 시작했고, 물줄기가 그친 후에야 우리는 대치가 이루어지는 골목으로 다시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필자 일행이 나가자마자 또다시 살수가 시작되었고 효자동 골목 양변을 골고루 쏘아주는 경찰의 세심함에 필자 일행은 시민들과 함께 분노하였다. 또한 물줄기를 정통으로 맞으면서도 결국 살수가 잠시 멈출 때까지 꺾이지 않은 '의혈'(중앙대) 깃발에 모두가 함께 환호하였다.
살수는 간헐적으로 계속 이루어졌고 이 와중에 전경버스 지붕에 올라가 빼앗은 전경의 방패로 살수차의 물줄기를 막는 시민이 연행되려는 것을 구해내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살수가 계속 이어지자 분노한 시민들은 생수병을 전경들에게 던지는 '폭력' 을 행사하기도 하였으며 다친 전경을 골목으로 끌어와 치료해서 돌려보내는 '불법' 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더 이상 '고시철폐 협상무효' 라는 구호는 잘 들리지 않았으며 '독재타도' 와 '정권퇴진' 이 시민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 격렬한 대치 속에서 학회 후배들이 걱정되어 연락을 해보니 삼청동 쪽에서도 살수를 하였고 모두 흠뻑 젖었다고 하여 바로 삼청동 일대로 달려 나갔는데, 효자동 골목을 나와 보니 광화문 일대에는 '해방구' 가 형성되어 있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곳곳에 모닥불을 피워 젖은 몸을 말리고 있었고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인 시민들이 거리에 앉아 기타를 치며 공연을 하고 있었다.
격렬한 대치의 와중에도 여유를 잃지 않고 운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민들을 보며 훈훈한 감정을 느낀 것도 잠시, 삼청동 동십자각 앞으로 급히 뛰어가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은 학회 후배가 필자를 맞이하였고 평소에도 여린 친구가 의료진에게 쇼크가 올지도 모른다는 주의를 듣고 다 젖은 담요를 두른 채 흠뻑 젖은 채로 앉아있었다. 물줄기를 잘 피해 다닌 필자 자신에 대한 부채의식을 느끼며 친구에게 외투를 벗어준 후 다들 조심하라는 당부를 남기고 다시 효자동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더 많은 모닥불들이 피워져 있었고 그 길에 만난 진보신당 당원 분들은 대치 당시 최전방에서 버텼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새벽 2시 경에도 대치상황은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었고 필자와 친구들 모두 배가 고파 잠시 빠져나와 종로 일대로 나와 요기를 하였는데 종로 1가에서 일단의 전경들이 종각 방면으로 뛰어가는 것을 목격하였다. 아마 이들이 나중에 삼청동 진압에 투입되지 않았을까 한다.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새벽 3시 경 다시 삼청동으로 복귀하여 그 곳에 잠시 있다가 다 함께 효자동으로 돌아왔다. 그 동안 인터넷 커뮤니티 DC inside '음식 갤러리' 의 유저들이 모은 성금으로 산 김밥이 배달되었고 그 외에 많은 시민들이 담요와 음식을 들고 현장으로 달려 나왔다. 필자 일행이 세종로를 지나오는 길에 전경버스들이 세종문화회관 앞에 집결하는 것을 보았는데, 정보를 접하고 효자동과 삼청동 양쪽에서 달려 나온 시민들의 저지에 의해 세종로를 전경버스로 막으려는 시도가 무산되는 것을 목격하였다. 아마 이곳이 막혔더라면 삼청동과 효자동 양쪽이 각각 따로 포위되어 쉽게 각개격파 되었을 것이다.
효자동으로 돌아와 보니 그 새 방수포까지 준비한 시민들이 살수차를 무력화 시키고 있었고 모닥불 앞에서 몸을 말리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시민들은 사뭇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필자의 일행 역시 그 동안 계속 걷고 뛰었던 피로가 몰려와 효자동 옆 골목으로 들어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불안한 평온도 얼마 가지 못하고 새벽 4시 반 경, 잔인한 새벽은 시작되었다. 효자동 골목에서 대치중이던 시민들이 갑자기 썰물같이 빠지는 것을 보자마자 필자는 본능적으로 졸던 친구들을 깨우며 '뛰어!' 를 외쳤고 친구들과 함께 정부종합청사 편 인도로 진입하였다. 인도에 도착하니 삼청동쪽에서도 충돌이 일어나 진중권 교수가 연행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다행히 삼청동쪽은 완전히 밀리지 않았다는 소식 역시 함께 들었다. 후에 들으니 전경 최정예 기동대인 소위 단셋(1001, 1002, 1003 기동대)이 투입되어 효자동이 그렇게 순식간에 밀린 것이라 하는데, 비무장한 시민을 상대로 최정예 기동대를 모두 투입하는 것은 시민들에 대한 이 정부의 시각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후, 시위에 처음 나와 보는데다가 처음 나온 시위에서부터 살수차에 전경 진압 등 거의 모든 진압방식을 봤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는 친구들을 안심 시키며 앞쪽으로 나가 도로를 보았다. 경복궁역 쪽에서 밀려오는 수많은 전경들이 살수차를 앞세우고 시민들의 대열을 밀어내며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정신없이 맞은편 인도로 뛰어온 후 효자동을 완전히 전경이 장악하기까지는 정말 순식간이었다. 순식간에 인도와 거리의 시민들이 분리되었고 대부분 대학생들만이 남은 거리의 대열은 살수차의 물줄기를 맞으며 전경들에게 밀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한총련(필자의 기억으로는 남총련과 전남대도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을 필두로 한 학생회 조직들이-비권을 표방하는 연세대와 고려대 학생회가 광화문과 삼청동 쪽에서 각각 선두에서 싸우고 있었다-잘 버텨준 덕택에 광화문에서 대치지점이 새로 형성되었다.
필자 일행 역시 밀리는 대열을 따라 광화문으로 이동하였고, 그 곳에서 선두에서 대치하느라 지친 학회 후배들과 합류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함께 보았다. 살수 포대 4개가 동시에 물줄기를 발사하며 시민들을 밀어내는 모습을. 하늘에는 계단구름이 떠있는 너무나 맑은 일요일 새벽 6시경이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두개의 탑> 의 하이라이트인 '헬름협곡 전투' 에서는 동이 틀 때 대군을 이끌고 온 마법사 간달프가 나타났지만 현실에서는 동이 틀 때 수많은 전경과 살수차가 시민들을 맞이하였다. 한 폭의 동양화 같은 북악산과 경복궁, 그리고 새벽의 하늘을 가르는 물줄기와 색색의 깃발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현실은 충분히 초현실적이었다. 필자의 친구들과 학회 후배들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그 광경을 보며 분노와 슬픔을 공유하였다. 피곤과 물에 젖은 몸을 이끌고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임과 동시에 마음속에 확실한 각인을 새겨주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온수' 를 외치는 시민들의 해학은 웃음이 가장 큰 무기라는 격언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인도에 있는 시민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살수차의 물줄기에 광화문 앞에서 대치하던 대열은 어쩔 수 없이 삼청동 동십자각까지 후퇴하여 삼청동에서 대치하던 대열과 합류하였고, 곧이어 투입된 수많은 전경들로 인해 합류한 대열은 인사동 입구까지 후퇴하였다. 친구들을 챙기며 함께 후퇴하느라 자세한 것은 보지 못했지만 이때도 전경의 폭력적 진압으로 인해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당시 전경의 진압 속도와 수, 그리고 대열을 보자면 충분히 많은 폭력이 발생했음은 가슴 아프지만 당연지사이긴 하다. 군사 행동에서 느껴지는 일시적인 일종의 집단적 응집성은 개인주의를 말살한다. 그 구성원 개개인은 악하지 않을지라도 폭력의 독점체인 국가가 수행하는 폭력의 도구로서 도구화된 전의경 집단은 거대한 폭력 유기체를 이루게 된다. 폭력 공동체에서 폭력의 실천은 사람들을 하나의 전체로 결속시킨다.
결국 인사동 입구와 조계사 골목이 만나는 삼거리에서 시민들과 경찰은 다시 대치를 하기 시작하였고 경찰은 살수하겠다는 위협을 반복하다가 갑자기 종로 경찰서장이 나와 시민대표와 협상을 하자는 수작을 부렸다. 단일 대오가 아닌 자발적 결사체에 특정 '대표' 를 내보내라는 것은 여전히 배후설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실토하는 것이라며 실소를 하고 있던 중, 종각 일대에서 조계사 거리를 통해 전경부대가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시민들은 교통 표지판 등을 이용하여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전경부대의 추가투입을 저지하였다. 바리케이드를 보니 문뜩 시가전이 생각나며 파리코뮌과 80년 광주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절도사건 하나 없었던 80년 5월의 광주와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에도 불구하고 다친 전경을 치료해주던 2008년 서울의 시민들이 겹쳐지며 애틋한 감정을 자아내었다.
경찰의 시간 끌기에 지쳐있던 중, 새벽의 효자동과 같은 일이 또 발생하였다. 아니, 이번에는 그 이상이었다. 그 광경을 보며 김남주 시인의 시 <학살 2> 가 바로 연상되었다. 아침 8시 우리는 보았다. 전경이 경찰특공대로 교체되는 것을. 아침 8시 우리는 보았다. 곤봉과 방패로 무장한 경찰특공대를. 아침 8시 우리는 보았다. 야만족의 침략과도 같은 경찰특공대의 진압을. 아침 8시 우리는 보았다. 인도로 들어오는 시민들이 끌려가는 것을. 아침 8시, 거리는 워커발에 짓밟힌 피의 강이었다. 바람은 워커발에 수없이 밟힌 여대생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아침은 살수차에 직격당한 여고생의 눈동자를 파먹고 경찰특공대는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민들을 끌고가고 있었다. 북악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버렸다.
후에 고려대 총학생회 관계자에게 들은 바로는, 경찰 측에서 여러 명의 시민 대표들과 협상을 하는 시늉을 하며 시간을 끌다가 기습적으로 공격을 가했다고 한다. 아 얼마나 계획적인 아침 8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폭력의 아침 8시였던가. 말 그대로 '시민 청소' 였다. 이때 일어났던 일들은 인터넷에서 직접 보는 편이 훨씬 더 생생할 것이다. 필자와 친구들은 안전한 곳에 있었기에 전반적인 흐름만 볼 수 있었을 뿐 최전방에서 일어나는 원초적 폭력들을 자세히 보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대열이 밀리는 속도로 미루어보아 무지막지한 진압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인사동에서부터 낙원상가까지 밀리는 시간이 채 5분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낙원상가를 지나 종로 3가로 나온 후 대열은 완전히 해산되었고 필자의 친구들은 귀가를 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대열은 시청 앞에서 재집결 하였지만 그 수는 500명 남짓-필자가 9시에 귀가한 후 1000명 남짓의 시민들이 모였다 한다-이었고 다들 너무나 지쳐 잔디에 앉아 숨을 추스르고 있었다. 2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다녀왔으니 모두 지쳤을 법하다. 이것이 내가 직접 겪은 사태의 전부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와 잠시 눈을 붙인 후 인터넷을 확인하니 이미 수많은 네티즌들이 6월 1일 새벽에 있었던 시간여행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공분하고 있었다. 필자의 친구들 역시 처음부터 격렬한 시위 현장을 보았음에도 다들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에 분노하며 필자보다 먼저 6월 1일 저녁에 시청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하였다. 다른 시민들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비무장 시민을 상대로 한 대대적인 살수차의 동원과 대테러 부대인 경찰특공대를 투입한 폭력적 진압은 누가 보더라도 정당화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6월 1일 새벽부터 아침까지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들은 그 동안 가두행진에 대한 폭력적 진압을 '상식적 수준' 으로 만들 정도로 벌거벗은 국가폭력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위를 축제와 같은 분위기로 즐기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시민들에 비해 초조함을 보이며 발톱을 드러낸 국가권력은 이미 그 밑천을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
한나 아렌트는 폭력의 대립물은 비폭력이 아닌 권력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권력은 그 자신의 정당성을 담보할 수 있지만 폭력은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인데, 이를 급진적으로 해석하자면 노골적인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권력은 더 이상 자체로서의 정당성을 잃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스스로의 정당성과 주체적 모델을 찾지 못한 채 과거의 망령 박정희를 흉내 내고 싶었던 2MB는 70년대의 '산업역군' 대신 2000년도의 '뿔난 국민' 을 마주하게 되었지만 이미 스스로의 연극에 도취된 그는 김재규 대신 차지철-어청수 경찰청장으로 재현되는-을 선택하는, 멸망의 순간마저 모방하는 코미디를 선보였다. 박정희는 '임자, 나는 괜찮아' 를 말하며 죽어갔지만 2MB는 최후의 순간에 무슨 말을 하게 될까.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였다가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이 벼락을 맞고 죽는-게다가 2MB의 측근들은 벼락을 맞을 확률은 광우병에 걸릴 확률보다 높다고 한다-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는 살아남아 6월 1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2MB의 화려한 주말은 쇠고기 재협상이 이루어진다 해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전두환의 삼저 호황이 그의 원죄를 가려주지 못했듯이 말이다. 그리고 2MB가 탄핵되는 날, 어청수 경찰청장은 2MB 보다 훨씬 큰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그 노골적이면서도 끔찍한 밤이 시민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한, 이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시민 앞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전경들에게 폭행을 당하면서도 화염병을 들지 않는 시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프레시안 기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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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정도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함께 종로 맥도날드 가서 야식을 먹고 올 정도로 여유가 있었고 다시 효자동쪽 현장 와서도 특별한 진전이 없어 다들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갑자기 진압이 시작되었다. 정말 파죽지세로 밀렸는데 집에 와서 보니 단 셋(1001,1002,1003 최정예 기동대)이 투입되었다고 하였는데, 조금만 늦었으면 단체연행 될 뻔 하였다.
대테러용 부대인 경찰특공대를 진압에 투입하고(시위대가 청와대에 대한 테러단으로 보였나 보다) 물대포 4개를 동시에 쏘아대는가 하면 '정체불명' 의 사과탄을 터뜨리고, 무차별적인 폭력 진압이 밤새워 이루어지는 것을 눈 앞에서 보며 황당함과 분노가 몰려왔다.
시민들이 죽창과 화염병으로 무장하고 나왔어도 이 정도의 병력이 투입되었을까 의문인데.시위경험이 전혀 없는 친구들과 함께 나온지라 친구들 챙기느라 진보신당 분들과 결합하지는 못하였지만 운동권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친구들과 함게 밤새 이루어지는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을 보며 함께 분노하였다.
물대포를 막는 '운동권 학생' 들에 대한 시민들의 응원은 2MB가 마지노선을 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하다(내 기억이 맞다면 연대사태 이후로 '운동권' 에 대한 응원은 최초인듯). 시민들에 대한 2MB의 신화적 폭력은 이제 시민과 '빡센 운동권' 의 경계를 지우고 모두가 반 MB 투쟁전선에 나서게 하는 계기를 형성해 줄 것 같기도 하다.
내 친구들은 진압광경을 보며 다들 분노하여 오늘 저녁에 다시 나오겠다고 한다. 나도 눈을 좀 붙인 다음에 다시 시청으로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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