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08/06/29 과격 폭력 진압 관련 대정부 단독담화문
  2. 2008/06/12 "'분노의 촛불' 워싱턴포스트,뉴욕타임스 1면 톱 게재" (1)
  3. 2008/06/10 결전의 날
  4. 2008/06/06 노파심
  5. 2008/06/03 2MB의 화려한 주말...20년 전으로의 시간여행 (4)
  6. 2008/06/01 올나잇 데모 후기 (2)
  7. 2008/05/19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8. 2008/05/13 2MB의 디스토피아
  9. 2008/05/12 초라한 대학생?
  10. 2008/05/04 MB 탄핵집회 후기 (1)
2008/06/29 16:27

과격 폭력 진압 관련 대정부 단독담화문

우선 원본 대국민 '협박문' 부터 감상을 하자.

http://www.frontiertimes.co.kr/news_view.html?s=FR01&no=28791&s_id=9&ss_id=0

자작 대정부 단독담화문

존경이 되지 않는 2MB 일당들!

어제 저녁, 또 다시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과격 폭력 진압이 벌어져 시민과 경찰 양쪽에서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일부 전경이 곤봉과 방패로 시민들을 무차별 폭행하고 빈 소화기통과 보도블럭까지 시민들에게 던져댔다. 나아가 쓰러진 여성을 발로 마구 밟는 일까지 발생했다. 참으로 걱정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이러한 불상사가 발생한 데 대해 깊은 분노의 뜻을 표하며,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끌려나와 부상을 당한 전의경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시민들은 그 동안 최대한 평화적인 방법으로 재협상을 주장하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한때 2MB는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경청하는 척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부의 태도 역시 2MB의 사과문과는 상당히 달라지고 있다. 쇠고기 문제 뿐만이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위험한 정책들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강행하려 하고 있다. 경찰의 진압 양상도 날이 갈수록 과격 폭력화 되고 있다.

또한 한나라당은 오늘 일요일, 개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정치적 성명을 발표하고,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가기 위한 후안무치한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친애하고 싶지 않은 2MB 일당들!

그 동안 시민들은 정부에 대해 정부의 자정능력을 믿는다는 차원에서 평화적인 집회를 위해 노력하며 인내를 갖고 정권퇴진 운동을 최대한 자제해 왔다.

그러나 잠시 고개를 숙였던 정부가 고소영 강부자 주도의 MB노믹스의 강행, 80년대식 진압을 다시 꺼내들면서 급기야 어젯밤과 같은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이러한 사태가 재발한다면, 시위에 참여한 일반시민들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사태는 절대로 막아야 한다. 시민들로서는 불법 폭력 과격 진압에 의한 불행한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불가피하게 소화전을 이용하는 등 정당방위 차원의 자위책을 강구할 수 밖에 없다.

또한 과격 폭력진압을 조장 선동하거나 극력 폭력행위자에 대해서는 끝까지 기록, 추적해 국민의 심판을 내릴 방침이다. 파괴된 방송장비 등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는 민사상의 손해배상도 청구하겠다. 아울러, 한나라당의 망발에 대해서도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다.

2MB 일당들!

이번 시위와 관련해 전의경들의 부모이자 친구인 시민들이 밤낮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젯밤에도 수백명이 넘는 시민들이 부상을 당했고, 이 중 상당수가 중상을 입었다.

지금까지 부상당한 시민들은 총 천여명에 달하고 있다. 10개가 넘는 농성천막과 140여 점의 농성장비도 파손됐다.

2MB의 집권이 네 달이나 계속되면서 자영업은 물론 우리 경제 전체에도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다. 국가신인도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외국 투자자와 관광객들도 발길을 돌리고 있다.

전 세계가 유가급등으로 위기에 몰려있고, 특히 우리 경제도 어려운 상황에서 2MB가 대통령으로 있을 경우 누가 우리나라에 믿고 투자하겠습니까?

2MB의 집권은 서민경제를 죽이는 일이고, 그 피해는 묵묵하게 일하고 있는 대다수 시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더구나 이런 현실은 아직까지도 시민들께 정확히 전달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때일수록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균형있는 보도가 필요하다. 정확한 정보들이 시민들께 전달될 수 있도록 조중동의 회개를 당부드린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는 시민들의 고충에도 관심을 갖고 보도해 주실 것을 거듭 요청드린다.

또한 한나라당도 개념없는 성명서를 철회하고, 미 쇠고기 재협상을 즉각 당론으로 정하기 바란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민의를 대변하여야 할 국회의원들 중 일부가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친애하고 싶지 않은 2MB 일당들!

이제는 우리 모두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발전 시키는 데 역량을 모아나가야 할 때다. 국민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가운데 정책을 수행하는 성숙한 국가 운영역량을 보여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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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2 12:00

"'분노의 촛불' 워싱턴포스트,뉴욕타임스 1면 톱 게재"



 평소 CNN 등의 사이트에 한국은 '아시아 뉴스' 로 묶여져 있으며 그나마도 별 뉴스가 나오지 않던 전례를 보자면 이러한 보도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서구인들이 민주주의를 소비하는 방식을 상기한다면 이는 결국 또다른 서구 중심주의의 반복으로 보인다.

 민주주의가 공고화 되었고 보편의 가치가 된 사회에 살고 있는-물론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서구인들의 눈으로 보자면 민주주의 혁명은 일종의 '로망' 에 가깝다. 얼마전 사학법 및 종교인 과세 논란이 벌어졌을 때 광신도들이 벌이던 '순교' 퍼포먼스와 같은 맥락선상에 닿아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개신교인들이 신화의 영역에 있는 사도들의 순교에서 뜨거움을 느꼈다면 '민주주의 신도'(비꼬는 의미는 아니다) 가 된 서구인들은 역시 신화가 되어버린, 자유와 평등을 위한 투쟁에서 뜨거움을 느낀다.

 87년 6월 항쟁의 열정을 경험적 차원에서 되살리던 한국의 386세대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서구인들은 한국의 '민주화 운동' 을 신화의 차원에서 소비한다. 그의 업적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구에서 그렇게 대접을 받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라파예트와 제퍼슨을 방불케 하는 민주주의 혁명 신화의 살아있는 주인공이였던 것이다.

 결국 서구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산업화' 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 과 '야생의 에너지' 를 읽어내듯, 아시아에서는 '불완전한 민주주의' 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민주주의 혁명' 의 신화를 읽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이러한 소비방법은 역설적으로 이들이 현재 국면을 비교적 정확히 파악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번 시위를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둘러싼 단순한 '반미' 차원에서의 운동으로 보는 것이 아닌, 2MB 정부의 정책방향과 독선적 국정운영에 대한 총체적인 거부로서 서술하고 있는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배후설을 운운하는 조중동의 기사보다 훨씬 정확하다. '반정부'(조중동은 2MB 정부에 대한 반대와 정부라는 체제 일반에 대한 거부를 구분하지 않고 쓰는 악습이 있다) 혹은 '반미' 가 아니라 '민주' 의 문제이다.

 그렇기에 민주주의가 내면에 공고화되지 않은 국내 파시즘 언론들(우파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보다 해외 언론의 민주주의에 대한 로망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역설이 발생한다. 외신을 보는 것은 제 3자의 시각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객관화하여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 그 장점이 있긴 하지만, 우리의 펜이 아닌 푸른 눈 속에서 우리의 실체를 보아야 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뉴욕타임스에서 발췌-

For the past 40 days, central Seoul has been rocked by demonstrations , which began as rallies by hundreds of teenage students, singing, dancing and holding candles to protest the importing of American beef. They have now evolved into a protest against government policies on education, health care and consumer pr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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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0 08:58

결전의 날

 결전의 날, 6월 10일이 밝았다. 3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일어나 학교에 있다가 시위에 참가할 계획인데,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이며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어제 최장집 교수가 인터뷰에서 말했다시피 이 정제되지 않은 열정을 제도화해주고 지속시켜 줄 정당이 부재한 현실에서 통제가 불가능한 에너지 덩어리가 어느쪽으로 흘러갈 것인가.

 일요일의 '폭력시위' 때문에 여론악화를 걱정하였지만 친절하게도 전경은 14세 소년의 뒤통수를 방패로 가격하였고 2MB는 세종로에 컨테이너 공구리를 치고 있다. 5월 초에 간단하게 끝낼 수 있던 문제를 이렇게까지 비화시킨 2MB의 선동능력과 정치력은 이래저래 역사에 남을 듯 하다.

 이 판국에서도 시민사회의 원로들-물론 이들이 '지도자' 는 아니지만-을 만날 생각은 하지 않고 뉴라이트를 위시한 '종교계' 인사들을 만나서 시시덕거리고 있는 것을 보면 금치산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쯤되면 네티즌 중에 몇명 뽑아서 대화하는 제스쳐라도 보여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끝까지 분위기 파악 못하고 부시 형님에게 전화를 걸어 형님이 약속 했다고 광고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당선 전의, 공식 외교라인이 아닌 종교계 인맥을 통한 부시와의 면담 추진이 떠오른다. 계엄령 직전의 갑호경계령도 내렸다던데, 사태를 치킨게임으로 만들지 못해 안달이 난 것 같다.

 다시 오늘의 과제. 컨테이너 성이 쌓인 세종로에서 우리는 공성전을 할 것인가, 축제를 할 것인가, 이합집산을 할 것인가. 내가 고민한다고 해봐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니 논문이나 쓰다가 저녁에 속편하게 가서 시민들의 흐름에 몸을 맡겨야겠다.

 그리고 내일, 세상은 바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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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6 03:35

노파심

소위 메이저캠들이 단체로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8, 90년대의 악습이 반복될 조짐이 보여서 걱정된다. 선도투를 이끄는 서울대와 자신들만의 응원문화로 결속하는 연대와 고대, 그리고 역시 강한 결속력을 자랑하는 이대.응원가를 개사하여 새로운 시대의 민중가요로 만드는 것까지는 바람직 하지만 응원행위 자체가 집회장의 놀이가 되어서는 안된다.

오늘 집회에 참석하여 계속 느낀 불편한 감정의 정체는 이것이였다. 나 역시 메이저캠 소속이긴 하지만 자신들끼리 몰려다니며 타 학교 학생들이 이질감을 느낄 수 있는 응원문화를 반복하는 것은 '영 아니올시다' 이다. 정 그 자리에서도 응원을 하고 싶으면 응원가를 좀 더 그럴듯하게 개사해와서 부르길 추천한다.

여하튼 대학생들이 본격적으로 판에 끼면서 깃발의 숫자도 대폭 늘어났는데 걱정이다. 시위의 '순수한' 목적이 '변질' 되는 것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시위의 대의는 지금까지 계속 자체적으로 진화하여 왔다. 문제는 깃발에 속할 곳이 없는 일반 시민들의 소외와 비메이저캠들의 소외감이다.

대오는 서울대가 지도하고 노래는 연고대가, 구호는 이대가 담당하면 시위할 맛이 나겠는가? 물론 이것은 응원문화와 같은 전체주의 문화에 심한 알레르기가 있는 본인의 편견이 심하게 작용한 기우에 불과할 뿐이다. 아니, 기우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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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3 11:56

2MB의 화려한 주말...20년 전으로의 시간여행

  5월 31일에서 6월 1일로 넘어가는 밤은 유난히 길고 격렬한 밤이었다. 25일 신촌에서부터 시작된 경찰의 강경진압-필자도 이 날 경찰의 포위망에 갇혀 연행될 뻔 하였다-은 서울시청 광장에서의 토끼몰이를 거쳐 기독교의 신이 천지를 창조하고 안식을 취했다는 거룩한 주일에 화룡정점을 찍었다. 신실한 개신교인인 2MB가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을 어기면서까지 너무나 청아한 북악산의 새벽을 더럽힌 이유는 자신이 예배드리기 전에 신에게 봉헌한 성전 서울의 '잡상인' 들을 모두 치우고자 함이었을까. 예수의 성전정화보다는 헤롯왕의 영아학살을 연상케 하는 그 '시민 청소' 의 전말을 필자가 보고 겪은 그대로 말하겠다.
 
  5월 31일 오후 7시, 예정된 대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문화제가 개최되었고 그 곳에는 이미 오후 4시 반부터 마로니에 공원에서 행진해온 여러 단체들과 시민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필자 역시 친구들과 시청 앞에서 만나 자리를 잡고 앉아 곧 시작한 촛불문화제에 참여하였다.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학회나 진보신당 단위로 참석할까도 생각을 하였지만 2MB의 독선적 행각과 시민들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에 분노하여 나온, 집회경험이라곤 전무한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였기에 계속 친구들과 함께 자리를 지켰다. 팬클럽 경험이 있는 친구들은 10만 명도 넘는 인원이 모였다며 탄성을 질렀고 필자 역시 플라자 호텔과 덕수궁 앞 도로까지 가득 메운 인파를 보며 감탄을 하였다. 깃발을 들고 참여한 단위들도 많았지만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시민의 수가 훨씬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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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락치 논란으로 격앙된 시민들의 관용과 절제를 당부하는 자유 발언 등이 있고나서 얼마 후 가두 행진이 시작되었고, 평소와는 달리 이 행진은 명동이 아닌 충정로 일대로 진행되었다. 사실 충정로 일대로 진행하는 것을 보며 25일의 악몽이 떠올라 흠칫하기도 하였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촛불의 행렬을 보며 시민들을 믿고 필자 역시 친구들과 함께 계속 행진을 하였다. 시민들은 행진 도중 중앙일보 사옥이 나오자 '중앙일보 폐간하라' 를 연호하였고 경찰청 건물이 나오자 '어청수는 사퇴하라' 를 외치는 재치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필자일행은 처음에는 대열의 선두그룹에 속해 있었지만 잠시 편의점에서 요기를 하다 보니 선두 대열과 떨어져 후미에 있게 되었는데, 갑자기 전경의 포위망이 형성될 수 있으니 뛰자는 소리가 나오는 바람에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일행이 갈라지게 되었다.
 
  전경의 '허리끊기' 를 막기 위해 밀집을 외치며 사직터널을 통과하여 보니-터널을 통과하던 중 구호에 맞추어 경적을 울려주시던 시민분도 계셨다- 전경버스가 사직공원 앞에서 진로를 차단하고 있었고 시위대의 수는 현저히 줄어들어 있었다. 뒤떨어져 있던 일행과 다시 합류하여 사후 대책을 논의하던 중, 차단지점 바로 앞의 갈림길에서 금속노조를 비롯한 노동자 분들의 대열이 등장하여 시민들의 환호를 받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전경들이 물러나 시위대는 전경버스 사이로 빠져나와 계속 행진을 하기 시작하였지만 경복궁역 일대에서 다시 전경들이 등장하여 대열을 가로막았다. 그렇지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나중에 들으니 몸싸움을 통해 저지선을 뚫었다고 한다) 곧 전경들은 빠지고 대열은 효자동으로 밀집하여 경복궁 담을 낀 골목에서 경찰과 대치하게 되었다.
 
  뒤늦게 학회 후배에게 연락을 해보니 어떤 길로 온지는 모르겠지만, 혹은 경복궁 앞의 대열에서 분리하여 나간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삼청동 쪽에서도 동십자각 앞에서 전경과 대치선을 형성하였다는 연락이 왔다. 청와대로 통하는 효자동과 삼청동 양쪽에서 대치가 시작된 것이다. 광화문을 사이에 둔 채 약 500m 의 거리가 있는 양쪽에서 경찰과 대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인원이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2MB의 독선과 폭주에 대한 반감을 지닌 시민들이 많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곧 11시 반이 넘어 지하철이 끊기고 최루탄이 터졌다는 소문이 돌았지만-실제로 소화기를 뿌리기는 하였다- 여전히 시민들은 거리를 메우고 있었고 모두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었다. 필자의 일행 역시 시민들과 함께 효자동 골목에서 '이명박은 물러나라' '비폭력' 등의 구호를 외치며 자리를 지켰다(사실 필자는 지하철이 끊기기 직전에 귀가하려는 생각을 하였지만 오히려 친구들이 잡는 덕분에 이 후기를 쓸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친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큰 충돌 없이 대치가 길어지는 바람에 필자 일행은 긴장이 풀려 대치지점을 유리창을 통해 볼 수 있는 골목에 들어와 앉아 쉬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시간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12시 즈음해서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갑자기 물줄기가 시민들의 머리위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사태라 일행 모두 어안이 벙벙한 채 창 건너편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만 있었는데 곧 중년의 남성 한 분이 우산을 들고 물줄기를 막기 시작했고, 물줄기가 그친 후에야 우리는 대치가 이루어지는 골목으로 다시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필자 일행이 나가자마자 또다시 살수가 시작되었고 효자동 골목 양변을 골고루 쏘아주는 경찰의 세심함에 필자 일행은 시민들과 함께 분노하였다. 또한 물줄기를 정통으로 맞으면서도 결국 살수가 잠시 멈출 때까지 꺾이지 않은 '의혈'(중앙대) 깃발에 모두가 함께 환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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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수는 간헐적으로 계속 이루어졌고 이 와중에 전경버스 지붕에 올라가 빼앗은 전경의 방패로 살수차의 물줄기를 막는 시민이 연행되려는 것을 구해내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살수가 계속 이어지자 분노한 시민들은 생수병을 전경들에게 던지는 '폭력' 을 행사하기도 하였으며 다친 전경을 골목으로 끌어와 치료해서 돌려보내는 '불법' 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더 이상 '고시철폐 협상무효' 라는 구호는 잘 들리지 않았으며 '독재타도' 와 '정권퇴진' 이 시민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 격렬한 대치 속에서 학회 후배들이 걱정되어 연락을 해보니 삼청동 쪽에서도 살수를 하였고 모두 흠뻑 젖었다고 하여 바로 삼청동 일대로 달려 나갔는데, 효자동 골목을 나와 보니 광화문 일대에는 '해방구' 가 형성되어 있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곳곳에 모닥불을 피워 젖은 몸을 말리고 있었고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인 시민들이 거리에 앉아 기타를 치며 공연을 하고 있었다.
 
  격렬한 대치의 와중에도 여유를 잃지 않고 운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민들을 보며 훈훈한 감정을 느낀 것도 잠시, 삼청동 동십자각 앞으로 급히 뛰어가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은 학회 후배가 필자를 맞이하였고 평소에도 여린 친구가 의료진에게 쇼크가 올지도 모른다는 주의를 듣고 다 젖은 담요를 두른 채 흠뻑 젖은 채로 앉아있었다. 물줄기를 잘 피해 다닌 필자 자신에 대한 부채의식을 느끼며 친구에게 외투를 벗어준 후 다들 조심하라는 당부를 남기고 다시 효자동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더 많은 모닥불들이 피워져 있었고 그 길에 만난 진보신당 당원 분들은 대치 당시 최전방에서 버텼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새벽 2시 경에도 대치상황은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었고 필자와 친구들 모두 배가 고파 잠시 빠져나와 종로 일대로 나와 요기를 하였는데 종로 1가에서 일단의 전경들이 종각 방면으로 뛰어가는 것을 목격하였다. 아마 이들이 나중에 삼청동 진압에 투입되지 않았을까 한다.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새벽 3시 경 다시 삼청동으로 복귀하여 그 곳에 잠시 있다가 다 함께 효자동으로 돌아왔다. 그 동안 인터넷 커뮤니티 DC inside '음식 갤러리' 의 유저들이 모은 성금으로 산 김밥이 배달되었고 그 외에 많은 시민들이 담요와 음식을 들고 현장으로 달려 나왔다. 필자 일행이 세종로를 지나오는 길에 전경버스들이 세종문화회관 앞에 집결하는 것을 보았는데, 정보를 접하고 효자동과 삼청동 양쪽에서 달려 나온 시민들의 저지에 의해 세종로를 전경버스로 막으려는 시도가 무산되는 것을 목격하였다. 아마 이곳이 막혔더라면 삼청동과 효자동 양쪽이 각각 따로 포위되어 쉽게 각개격파 되었을 것이다.
 
  효자동으로 돌아와 보니 그 새 방수포까지 준비한 시민들이 살수차를 무력화 시키고 있었고 모닥불 앞에서 몸을 말리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시민들은 사뭇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필자의 일행 역시 그 동안 계속 걷고 뛰었던 피로가 몰려와 효자동 옆 골목으로 들어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불안한 평온도 얼마 가지 못하고 새벽 4시 반 경, 잔인한 새벽은 시작되었다. 효자동 골목에서 대치중이던 시민들이 갑자기 썰물같이 빠지는 것을 보자마자 필자는 본능적으로 졸던 친구들을 깨우며 '뛰어!' 를 외쳤고 친구들과 함께 정부종합청사 편 인도로 진입하였다. 인도에 도착하니 삼청동쪽에서도 충돌이 일어나 진중권 교수가 연행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다행히 삼청동쪽은 완전히 밀리지 않았다는 소식 역시 함께 들었다. 후에 들으니 전경 최정예 기동대인 소위 단셋(1001, 1002, 1003 기동대)이 투입되어 효자동이 그렇게 순식간에 밀린 것이라 하는데, 비무장한 시민을 상대로 최정예 기동대를 모두 투입하는 것은 시민들에 대한 이 정부의 시각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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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후, 시위에 처음 나와 보는데다가 처음 나온 시위에서부터 살수차에 전경 진압 등 거의 모든 진압방식을 봤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는 친구들을 안심 시키며 앞쪽으로 나가 도로를 보았다. 경복궁역 쪽에서 밀려오는 수많은 전경들이 살수차를 앞세우고 시민들의 대열을 밀어내며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정신없이 맞은편 인도로 뛰어온 후 효자동을 완전히 전경이 장악하기까지는 정말 순식간이었다. 순식간에 인도와 거리의 시민들이 분리되었고 대부분 대학생들만이 남은 거리의 대열은 살수차의 물줄기를 맞으며 전경들에게 밀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한총련(필자의 기억으로는 남총련과 전남대도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을 필두로 한 학생회 조직들이-비권을 표방하는 연세대와 고려대 학생회가 광화문과 삼청동 쪽에서 각각 선두에서 싸우고 있었다-잘 버텨준 덕택에 광화문에서 대치지점이 새로 형성되었다.
 
  필자 일행 역시 밀리는 대열을 따라 광화문으로 이동하였고, 그 곳에서 선두에서 대치하느라 지친 학회 후배들과 합류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함께 보았다. 살수 포대 4개가 동시에 물줄기를 발사하며 시민들을 밀어내는 모습을. 하늘에는 계단구름이 떠있는 너무나 맑은 일요일 새벽 6시경이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두개의 탑> 의 하이라이트인 '헬름협곡 전투' 에서는 동이 틀 때 대군을 이끌고 온 마법사 간달프가 나타났지만 현실에서는 동이 틀 때 수많은 전경과 살수차가 시민들을 맞이하였다. 한 폭의 동양화 같은 북악산과 경복궁, 그리고 새벽의 하늘을 가르는 물줄기와 색색의 깃발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현실은 충분히 초현실적이었다. 필자의 친구들과 학회 후배들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그 광경을 보며 분노와 슬픔을 공유하였다. 피곤과 물에 젖은 몸을 이끌고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임과 동시에 마음속에 확실한 각인을 새겨주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온수' 를 외치는 시민들의 해학은 웃음이 가장 큰 무기라는 격언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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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 있는 시민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살수차의 물줄기에 광화문 앞에서 대치하던 대열은 어쩔 수 없이 삼청동 동십자각까지 후퇴하여 삼청동에서 대치하던 대열과 합류하였고, 곧이어 투입된 수많은 전경들로 인해 합류한 대열은 인사동 입구까지 후퇴하였다. 친구들을 챙기며 함께 후퇴하느라 자세한 것은 보지 못했지만 이때도 전경의 폭력적 진압으로 인해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당시 전경의 진압 속도와 수, 그리고 대열을 보자면 충분히 많은 폭력이 발생했음은 가슴 아프지만 당연지사이긴 하다. 군사 행동에서 느껴지는 일시적인 일종의 집단적 응집성은 개인주의를 말살한다. 그 구성원 개개인은 악하지 않을지라도 폭력의 독점체인 국가가 수행하는 폭력의 도구로서 도구화된 전의경 집단은 거대한 폭력 유기체를 이루게 된다. 폭력 공동체에서 폭력의 실천은 사람들을 하나의 전체로 결속시킨다.
 
  결국 인사동 입구와 조계사 골목이 만나는 삼거리에서 시민들과 경찰은 다시 대치를 하기 시작하였고 경찰은 살수하겠다는 위협을 반복하다가 갑자기 종로 경찰서장이 나와 시민대표와 협상을 하자는 수작을 부렸다. 단일 대오가 아닌 자발적 결사체에 특정 '대표' 를 내보내라는 것은 여전히 배후설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실토하는 것이라며 실소를 하고 있던 중, 종각 일대에서 조계사 거리를 통해 전경부대가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시민들은 교통 표지판 등을 이용하여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전경부대의 추가투입을 저지하였다. 바리케이드를 보니 문뜩 시가전이 생각나며 파리코뮌과 80년 광주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절도사건 하나 없었던 80년 5월의 광주와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에도 불구하고 다친 전경을 치료해주던 2008년 서울의 시민들이 겹쳐지며 애틋한 감정을 자아내었다.
 
  경찰의 시간 끌기에 지쳐있던 중, 새벽의 효자동과 같은 일이 또 발생하였다. 아니, 이번에는 그 이상이었다. 그 광경을 보며 김남주 시인의 시 <학살 2> 가 바로 연상되었다. 아침 8시 우리는 보았다. 전경이 경찰특공대로 교체되는 것을. 아침 8시 우리는 보았다. 곤봉과 방패로 무장한 경찰특공대를. 아침 8시 우리는 보았다. 야만족의 침략과도 같은 경찰특공대의 진압을. 아침 8시 우리는 보았다. 인도로 들어오는 시민들이 끌려가는 것을. 아침 8시, 거리는 워커발에 짓밟힌 피의 강이었다. 바람은 워커발에 수없이 밟힌 여대생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아침은 살수차에 직격당한 여고생의 눈동자를 파먹고 경찰특공대는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민들을 끌고가고 있었다. 북악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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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에 고려대 총학생회 관계자에게 들은 바로는, 경찰 측에서 여러 명의 시민 대표들과 협상을 하는 시늉을 하며 시간을 끌다가 기습적으로 공격을 가했다고 한다. 아 얼마나 계획적인 아침 8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폭력의 아침 8시였던가. 말 그대로 '시민 청소' 였다. 이때 일어났던 일들은 인터넷에서 직접 보는 편이 훨씬 더 생생할 것이다. 필자와 친구들은 안전한 곳에 있었기에 전반적인 흐름만 볼 수 있었을 뿐 최전방에서 일어나는 원초적 폭력들을 자세히 보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대열이 밀리는 속도로 미루어보아 무지막지한 진압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인사동에서부터 낙원상가까지 밀리는 시간이 채 5분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낙원상가를 지나 종로 3가로 나온 후 대열은 완전히 해산되었고 필자의 친구들은 귀가를 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대열은 시청 앞에서 재집결 하였지만 그 수는 500명 남짓-필자가 9시에 귀가한 후 1000명 남짓의 시민들이 모였다 한다-이었고 다들 너무나 지쳐 잔디에 앉아 숨을 추스르고 있었다. 2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다녀왔으니 모두 지쳤을 법하다. 이것이 내가 직접 겪은 사태의 전부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와 잠시 눈을 붙인 후 인터넷을 확인하니 이미 수많은 네티즌들이 6월 1일 새벽에 있었던 시간여행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공분하고 있었다. 필자의 친구들 역시 처음부터 격렬한 시위 현장을 보았음에도 다들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에 분노하며 필자보다 먼저 6월 1일 저녁에 시청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하였다. 다른 시민들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비무장 시민을 상대로 한 대대적인 살수차의 동원과 대테러 부대인 경찰특공대를 투입한 폭력적 진압은 누가 보더라도 정당화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6월 1일 새벽부터 아침까지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들은 그 동안 가두행진에 대한 폭력적 진압을 '상식적 수준' 으로 만들 정도로 벌거벗은 국가폭력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위를 축제와 같은 분위기로 즐기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시민들에 비해 초조함을 보이며 발톱을 드러낸 국가권력은 이미 그 밑천을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
 
  한나 아렌트는 폭력의 대립물은 비폭력이 아닌 권력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권력은 그 자신의 정당성을 담보할 수 있지만 폭력은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인데, 이를 급진적으로 해석하자면 노골적인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권력은 더 이상 자체로서의 정당성을 잃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스스로의 정당성과 주체적 모델을 찾지 못한 채 과거의 망령 박정희를 흉내 내고 싶었던 2MB는 70년대의 '산업역군' 대신 2000년도의 '뿔난 국민' 을 마주하게 되었지만 이미 스스로의 연극에 도취된 그는 김재규 대신 차지철-어청수 경찰청장으로 재현되는-을 선택하는, 멸망의 순간마저 모방하는 코미디를 선보였다. 박정희는 '임자, 나는 괜찮아' 를 말하며 죽어갔지만 2MB는 최후의 순간에 무슨 말을 하게 될까.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였다가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이 벼락을 맞고 죽는-게다가 2MB의 측근들은 벼락을 맞을 확률은 광우병에 걸릴 확률보다 높다고 한다-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는 살아남아 6월 1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2MB의 화려한 주말은 쇠고기 재협상이 이루어진다 해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전두환의 삼저 호황이 그의 원죄를 가려주지 못했듯이 말이다. 그리고 2MB가 탄핵되는 날, 어청수 경찰청장은 2MB 보다 훨씬 큰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그 노골적이면서도 끔찍한 밤이 시민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한, 이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시민 앞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전경들에게 폭행을 당하면서도 화염병을 들지 않는 시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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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1 11:16

올나잇 데모 후기

저녁 7시부터 아침 9시까지 계속 시위대와 함께 있다가 얼마전에 집에 들어왔다. 몸을 사리느라 가두행진을 제외한, 효자동과 삼청동, 그리고 진압과정에서의 일정은 대부분 인도쪽에서 보긴 하였지만 대치 진영과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살수차 모이스쳐라이징도 좀 받고 충돌도 생생히 목격하였다.

새벽 4시 정도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함께 종로 맥도날드 가서 야식을 먹고 올 정도로 여유가 있었고 다시 효자동쪽 현장 와서도 특별한 진전이 없어 다들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갑자기 진압이 시작되었다. 정말 파죽지세로 밀렸는데 집에 와서 보니 단 셋(1001,1002,1003 최정예 기동대)이 투입되었다고 하였는데, 조금만 늦었으면 단체연행 될 뻔 하였다.

대테러용 부대인 경찰특공대를 진압에 투입하고(시위대가 청와대에 대한 테러단으로 보였나 보다) 물대포 4개를 동시에 쏘아대는가 하면 '정체불명' 의 사과탄을 터뜨리고, 무차별적인 폭력 진압이 밤새워 이루어지는 것을 눈 앞에서 보며 황당함과 분노가 몰려왔다.

시민들이 죽창과 화염병으로 무장하고 나왔어도 이 정도의 병력이 투입되었을까 의문인데.시위경험이 전혀 없는 친구들과 함께 나온지라 친구들 챙기느라 진보신당 분들과 결합하지는 못하였지만 운동권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친구들과 함게 밤새 이루어지는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을 보며 함께 분노하였다.

물대포를 막는 '운동권 학생' 들에 대한 시민들의 응원은 2MB가 마지노선을 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하다(내 기억이 맞다면 연대사태 이후로 '운동권' 에 대한 응원은 최초인듯). 시민들에 대한 2MB의 신화적 폭력은 이제 시민과 '빡센 운동권' 의 경계를 지우고 모두가 반 MB 투쟁전선에 나서게 하는 계기를 형성해 줄 것 같기도 하다.

내 친구들은 진압광경을 보며 다들 분노하여 오늘 저녁에 다시 나오겠다고 한다. 나도 눈을 좀 붙인 다음에 다시 시청으로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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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9 02:35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조용히 지나간 5월 18일을 기리며 모든 것이 씻겨 내려간, 비가 그친 새벽에 이 글을 쓴다. ‘잊혀진 혁명’ 이 되어가는 4.19도 그러했지만 5.18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간다. 그리고 이 망각의 틈새에서 현재에 살아가고 있는 자들은 목소리 없는 과거의 망령을 불러낸다.

 ‘광주사태’ 발언의 주인공인 2MB 가 망월동에 섰다. 무엇이 그리도 부끄러운지 철통경비 속에서 언제나 한결같은 망언을 쏟아내었는데, 그를 보고 있자니 무덤에서 시체를 살려내는 흑마법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지켜야 하는 것은 동지의 맹세가 아니라 ‘대한민국 선진화’ 의 기치이다. 확률을 들먹이며 이웃에 대한 사랑을 저버린 소고기 협정, 부시의 기도에 감동하며 손수 그의 카트라이더가 되어 날려버린 국가의 명예, 그리고 집권 3개월의 시점에서 탄핵으로 울려 퍼지는 그의 이름.

 이 모든 것들을 날려버리고 2MB가 잡은 것은 ‘대한민국 선진화’ 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에 의한, 무엇을 하는 선진화인지 알 수가 없다. 2MB는 이에 대해 함구한 채 삽을 들고 진두지휘를 할 뿐이다.

 사나이 가는 길에 눈도 오고 비도 오는 법인만큼 대한민국 선진화의 길에 소수 선동세력의 반대쯤은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전국의 수많은 교수들과 노벨상 수상자까지 2MB의 길에 눈이 되고 비가 되었다. 아마 망월동에서 시체를 살려내어 좀비부대로 다 쓸어버릴 생각인 모양이다.

 민주화와 선진화를 연관 짓는 그 변태적 발상에는 경악을 금할 길이 없거니와, 5월 18일에 망월동 묘지에서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행위는 그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접게 만든다. 최소한 위정자들만은 5.18을 잊어서는 안 되며 그 원형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국가폭력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힌 기본적인 요구들.

 그들이 원했던 것은 국민의 기본권이 존중되는 기초적인 ‘민주주의’ 사회였지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국민성공’ 사회 따위가 아니었다. 2MB 짜리 머리로는 연산이 힘들지 모르겠지만 양자는 단계적 개념이 아니며 대립적 개념이다. 기본적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민주화와 강자의 자유와 차별을 외치는 2MB의 선진화.

 2MB는 이렇게 자신의 더러운 손으로 망월동에 흙을 칠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아직 5. 18을 잊지 않았다. 5월 17일에 있었던 촛불집회는 5.18의 창조적 계승이다. 민주주의의 기초적 평등권과 공동선 개념에 대한 고차원적 이해는 없지만 ‘민주화’ 라는 당위를 위해 일어났던 80년 광주의 시민들과 변형 프리온의 구체적 기작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는 없음에도 ‘생존권’ 이라는 당위를 위해 일어난 오늘날 전국의 시민들은 20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은 형제이다.

 5. 18 영령들의 요구를 ‘만들어내’ 그들의 시체만을 취하려는 2MB 는 그 영령들에 의해 다시 한 번 20년 전,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화려한 휴가를 갈 것이냐 6.29 선언을 발표할 것이냐는 순전히 2MB 의 선택에 따른 문제이고 그의 선택에 따라 앞으로 새로운 5.18의 탄생 가능성이 갈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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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3 06:36

2MB의 디스토피아

 송기호 변호사의 꼼꼼하고 친절한 영어강의 덕분에 광우병 파동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아마 수능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에게 해석을 맡겼어도 '오역' 은 없었을 것이다. 글로벌을 강조하는 2MB로서는 여간 '쪽팔린'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이것을 빌미로 전국민에게 영어몰입교육의 필요성을 홍보 할지도 모르겠다. 히틀러가 그랬듯이 자기가 저지른 일을 자기가 수습하며 그 효과를 강조하려는 것인데, 그래도 거리로 쏟아져 나올 줄 아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20세기 바이마르 공화국의 시민들보다는 똑똑하니 다행이다. 2MB의 대내수행력 확보는 당분간 언감생심이다.

 그런데 오늘 친구에게 협상단의 오역만큼이나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강남의 중학생들이 한글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어릴때부터 대학의 외국인 입학 전형을 노리고 교육받은 아이들은 생각 자체를 영어로 한다는 것인데, 제국의 언어를 쓰는 식민지의 엘리트들과 토착언어를 쓰는 피지배 계층이 떠올랐다면 너무 과도한 경계심일까. 게다가 더욱 위험한 것은 이들이 이끌어갈 한국의 미래이다. 영어와 한글 양쪽 모두를 완벽히 구사할 수 없는 그들이 과연 언어를 이용한 높은 추상층위의 사고를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아마 대다수가 테크노크라트가 될 것이다. 그럼 테크노크라트에게 역할을 배분하는 '지도자' 는?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2MB?

 이대로 간다면 2MB가 만들어갈 미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꼴통' 정부와 그들을 뒷받침하는 노란피부 하얀가면의 엘리트들, 그리고 이에 좌절하고 저항하는 일반 시민들로 구성될 것이다. 2MB 짜리 두뇌와 빈곤한 언어능력의 테크노크라트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으니 자연히 결과물은 없을 것이며 시민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를 것이다. 2MB 정부의 현재 행각으로 보아서는 독재를 하고 싶어도 특유의 무뇌성과 촌스러움으로 인해 선동 혹은 세뇌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끊임없는 갈등의 늪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것은 합의 도출을 위한 갈등이 아닌, 서로의 존재를 놓고 벌이는 계급투쟁. 시민들의 저항으로 인한 대내수행력 확보의 실패와 제국에 대한 충성심에 자발적으로 포기한 대외자율성의 부재가 어우러진다면 그것은 국민국가의 존립요건 자체를 위협하는 일이다.

 최장집 교수는 2MB 당선 직후 그것을 민주주의의 후퇴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하였지만 2MB 정부의 꼴통짓은 성실한 노학자의 상식적 예상범위를 훌쩍 넘어섰다. 그가 얼마전 독재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오랜만에 현실정치에 나선-총선 당시 노회찬, 심상정 선거유세 지원- 이유는 아마도 2MB 정부의 행각을 보며 느낀 황당함일 게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도 책임성의 부재를 이유로 예리한 비판을 수행했던 그가 2MB 정부의 독선과 아집에 대해서 느꼈을 당혹감은 짐작이 된다. 국민의 의사를 자신의 앞길을 방해하는 눈과 비 정도로 생각하는 위인이 '섬기는 리더십' 을 주장하는 초현실적인 상황은 진보대논쟁 당시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아봐야 사람들이 정신을 차린다' 던 손호철 교수의 말을 현실로 만들어주었다.

 아마 2MB가 현재 구상하고 있는 정책들을 모두 강행한다면 앞으로 5년 이내에 올 세상은 완벽한 디스토피아. 그것도 2MB 수령님을 모시고 할렐루야를 외치는 우민들의 천국이 아닌,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느끼는 정치의식이 깨어난 시민들을 볼모로 잡고 있는 디스토피아이기에 더욱 암울하다. 그래서 현재의 탄핵 움직임은 중요하다. 그것이 탄핵까지는 가지 않더라도(사실 누가 뒤를 이어도 2MB보다는 나을게다) 2MB에게 책임성의 원리라는 방울을 채워야 한다. 이번 움직임이 죽는다면 2MB 를 위시한 꼴통, 반동, 수구세력들의 반격은 더욱 거세질터. 이번이 마지막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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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2 03:21

초라한 대학생?

 지난 며칠간 이어진 촛불집회는 한국 시민사회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이것에 대해 다중을 언급하며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이 출현하였다고 하는 것은 과도한 낙관론일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 맹아만큼은 확인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이번 집회에서 가장 고무적이였던 것은 10대들의 참석이다. 물론 '괴담' 수준의 소문이 돌고 그에 부화뇌동하여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언제 '괴담' 은 커녕 '정론' 에도 10대가 거리로 나왔던 적이 있던가. 내 기억으로는 4.19를 제외하고는 없다. 10대들을 반김반핵 집회에 '동원' 하지 못한 것은 반동세력의 무능인 것이지 10대들의 무지는 아니다.

 여하튼 10대들이 '거리로 나섰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굳이 '거리' 일 필요도 없다. 친구들과 연대하여 '반항의 목소리' 를 낼 수 있다는 것은 미래의 희망이다. 막강한 권력을 지닌 반동세력의 조직적 음해와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10대는 정말 멋지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문제는 20대, 특히 20대 초반이다. 이번 집회에서 20대 초반 학생들은 그리 많이 보이지 않았다. 10대는 진보신당 화이팅을 외치고 3,40대 회사원들이 박카스와 후원금을 주고 가는 동안 20대 대학생 커플은 '진보신당이 어디야' 를 말하며 지나쳤다.

 '무식한 대학생' 이라고 화낼 힘도 없다. 최소한 정당에 몸을 담고 있는 이상 그들의 무식을 탓하기 보다는 '왜 진보신당은 대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의제를 선점하지 못하는가' 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 생산적이니 말이다.

 사실 내 주변을 보면 대학생들 역시 이번 문제에 대한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되어 있는 듯 하다. 10대의 움직임에 대해 '생각없는 움직임' 이라고 경멸을 보이며 자신은 고매하게 상아탑에 박혀 있겠다는-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대학생일 수록 대부분 상아탑의 학문과는 거리가 멀게 무식하고 멍청하고 천박하다- 몇몇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문제는 그들이 거리로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물론 취업준비, 토익시험준비는 바쁘리라. 하지만 최소한 그들에겐 그들을 막는 교장과 학생주임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물론적 제약을 뚫고 나온 10대들 앞에서 관념론적 제약을 들먹이는 20대는 다소 초라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문제는 곧 평생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너무 타박하기에는 미안해진다.

 그렇다면 또 무엇이 문제인가. '같이 나갈 사람' 이 없다는 것인데, 이것이 결정적 문제인 듯 하다. 개개인은 도서관에서 열심히 취업준비를 하다가도 과 친구들과 작당이 되면 수업을 째고 놀러나갈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의 대학생들이다. 여기서 대학생들이 친구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두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자.

 한 사회에서 개인주의의 척도는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의 수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는 확실히 개인주의가 부족한 사회임이 분명하다.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대학생의 사진이 '아웃사이더 갤러리' 의 짤방으로 쓰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집회-게다가 한국의 집회 문화는 개인이 가면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에 혼자 나가는 것은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면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집회에 같이 나갈' 친구들을 구하기도 힘들 것이다. 평소 같이 다니는 친구들에게 '무슨무슨 집회 있는데 같이 나갈래' 라고 하기도 힘들 뿐더러, 그 이전부터 MB에 대한 의견을 나눌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일상에서의 정치적 담론의 터부시가 대학생들을 고립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다.

 MB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들이 또래집단 내에서 유통될 수 있는 10대는 분명 현재 대학생들과는 다른, '연대' 의 경험을 가지고 사회에 나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정치' 에 대한 터부가 아닌, 정치행위가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알고 사회에 나오게 될 것이다. 이들이 만들어갈 사회는 분명 현재의 대학생들이 만들어갈 사회와는 다를 것이다.

 하나의 화두가 도출된다. 대학생들은 초라해지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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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4 00:22

MB 탄핵집회 후기

 유학가는 친구가 지방에서 올라온 관계로 오늘 있는 소고기 집회는 참여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어제 MB 탄핵 집회는 참석하였기에 간단하게나마 후기를 적어볼까 한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시청역에서 내리니 출구에서부터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청계청 쪽으로 조금 걸어가니 길이 막혀 도저히 갈 수가 없어 빌딩 뒤편으로 돌아가 결국 친구가 있는 대열로 합류를 하였다. 대열 합류 도중에 뒤쪽을 보니 청계천 다리가 있는 곳까지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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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 늦은지라 집회 도중에 참여하긴 했는데 사실상 별 차이는 없었다. 집회 주최측의 운영 미숙으로 인해 스피커의 음량이 충분하지 못해 앞에서 뭐라고 웅얼거리는 지 뒤쪽에선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하였다. 앞에서 간간히 내지르는 간단한 구호와 함성만이 간헐적으로 전달될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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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인파가 모였지만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모두가 답답해 하던 중, 동국대 법대 학생이 만들어온 피켓-재치 넘치는 문구들이 적혀있었다-을 드니 모두가 웃으며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군중들이 외치는 자발적인 구호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문제는 주최측에서 구호를 제대로 준비해오지 못했다는 점이다. '너나먹어 미친소' '탄핵' 등의, 집회의 기본(?)인 박자마저 제대로 맞추지 못한 단순한 구호들-그나마 레퍼토리도 극히 적은-은 앞서가는 대중의 열정을 표현해주기엔 부족했다.

 집회가 후반으로 갈수록 조중동에 대한 공격 등, 정치성 풍부한 구호들이 등장하여 나름 이색적이긴 했다. 여하튼 이번 집회는 한국 대중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줌과 동시에 그 과제 역시 알 수 있는 집회였다. 자세한 분석은 추후에 따로 포스팅 하겠다.

-여담-

 주최측의 농간(?)으로 인해 깃발을 들고오지 못하는 바람에 꽤나 늦게 모였지만 집회에 참가한 진보신당 당원들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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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중권씨는 그를 알아보는 수많은 시민들과 사진을 찍으며 진보신당의 이름을 파는데에 일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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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상정, 정태인, 진중권씨가 모여서 한컷. 후에 노회찬 전 의원도 합류하였지만 다른 일정 관계로 급히 자리를 뜨는 바람에 나머지 사람들끼리 뒷풀이를 갔다.

 새벽 4시경까지 이어진 술자리는 진중권씨의 지갑을 얇게 하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즐거운 술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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