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의 변주곡'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08/07/17 이영희 노동 "민주노총, 탄압 운운 말고 자성해야" (2)
  2. 2008/07/12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3. 2008/07/10 문뜩 떠오른 헛생각
  4. 2008/07/07 관계에 대한 잡문
  5. 2008/06/29 과격 폭력 진압 관련 대정부 단독담화문
  6. 2008/06/17 2MB 요정설에 대한 신뢰도 대폭 증가 (2)
  7. 2008/06/10 결전의 날
  8. 2008/06/08 '폭력시위' 에 대한 일련의 반응에 대한 단상 (6)
  9. 2008/06/06 노파심
  10. 2008/05/18 체 게바라의 굴욕
2008/07/17 20:01

이영희 노동 "민주노총, 탄압 운운 말고 자성해야"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17일 "노동자의 파업은 도덕적 정당성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며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의 도덕성이란 (노동조합이) 행동을 자제하고 위기 극복에 함께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희 장관은 이날 노동부 출입기자와 만나 "(민주노총이) 우리 경제를 걱정하는 근로자의 대표라면 탄압 운운할 것이 아니라 자성해야 한다"며 민주노총을 맹비난했다.

 '미국산 쇠고기 저지' 총파업에 대해서도 이 장관은 "정치적 의사 표시를 할 수 있지만, 생산·산업 현장은 정치와 무관하게 쉴 사이 없이 움직여야 한다"며 "우리의 법은 정치적 파업이 허용돼 있지 않음에도 민주노총이 '현 정부를 무릎 꿇린다', '생산 질서에 타격을 가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영희 노동 "민주노총, 탄압 운운 말고 자성해야">, 프레시안, 7월 17일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 “노동운동은 이익집단운동으로 전락했다” 라든가, “초심으로 돌아가자” 라고 말하며, 가거의 도덕적 가치를 불러들이고 이 사태에 대해 도덕적으로 개탄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이들 운동이 더 이상 과거의 도덕성을 견지할 수 없는 것은, 거시적으로는 민주화라는 정치적 조건의 변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경제발전에 의한 노동시장 조건의 변화 때문이기도 하다. 미시적으로는 운동에 헌신하는 개인이 자기 이익에 반해, 그리고 인간의 행복 추구 욕구에 거슬러 지속적으로 도덕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할 때 도덕주의적 운동은 네메시스의 제물이 되는 처지에 놓인다. 운동의 도덕화와 현실간의 괴리가 커지면서, 결과적으로 운동의 도덕성 위기라는 역설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이 애초 내세웠던 도덕성의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는 순간, 이 도덕주의를 통하여 노동자를 이롭게 하는 무언가의 수행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순간, 반노동적인 보수파들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로부터도 가혹한 조롱과 비판의 대상이 된다.

<민주주의의 민주화>, 최장집,  p.72-73


2004년 기준 GDP 세계 10위, 교역량 세계 12위의 OECD 가맹국가라는 사실과 대비하여, 한국의 노동자들이 사회경제적 차원의 보편적 시민권을 여전히 부여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한국 민주주의의 커다란 치부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민주화는, 핵심적인 생산자 집단으로서 조직노동자를 평등한 사회성원으로 그리고 노사관계에서 기업의 정당한 파트너로 인정하는, 이른바 사회통합적 의식혁명을 갖지 못했다. NL적 문제의식과는 달리, PD적 문제의식은 현실 속으로 투입되지 못한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그것은 냉전반공주의와 권위주의적 산업화의 성장이데올로기가 중첩되면서 완강한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구축한 결과물임에 분명하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는 노동관련 의식에 관한 한 철저하게 계급적이다. 한국 사회의 상류층과 중산층, 나아가 한국인 일반이 노동에 대해 갖는 인식은 분명 계급적으로 차별적이다.

 민주정부의 지도자들과 노동정책의 결정자들이 노동과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인식 역시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에 기반해 있다. 현 정부가 비정규직 입법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여 준 정규직 노조에 대한 인식이 그러하다. 정규직은 강성노조의 보호를 받으며 고용보장, 높은 임금, 풍부한 사내복지를 누리는 일종의 노동귀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나친 혜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이 혜택을 그렇지 못한 비정규직과 나누어 갖는 도덕성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부터 파생되는 논리는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중략)......

노동자들은 공익, 또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여기에서 공익이란, 노동자의 역할은 묵묵히 기업의 이윤 창출에 봉사하고 그것이 모아져 국민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져야 하며 여기에 장애가 될 만큼 높은 임금이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담는다. 그들의 이익표출과 요구는 파업이나 농성과 같은 집단행동으로 나타나거나 더욱이 폭력적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어떤 다른 집단보다도 법의 지배에 따라야 한다.

<민주주의의 민주화>, 최장집, p. 15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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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2 02:58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는 가지 말라는 격언은 단순한 당위적 명제가 아니라 아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인간관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뭇 참새가 봉황의 뜻을 알 수 없듯이, 까마귀들은 백로의 흰 순수를 이해할 수 없다. '우리와 같이 검어지지 않고 왜 혼자 순수한 척 할까' 이들은 백로의 순수를 순수 자체로 보고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백로의 순수 자체를 본질적인 비순수로 생각한다. 즉, 애초에 흰 깃털이 아닌 검은깃털 하얀가면으로 백로를 파악했기에 백로의 순수성은 어느덧 거짓과 가식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 속에서 백로는 까마귀들의 좋은 안주감이 되기 마련이고 결국 상처받는 건 백로 혼자요, 쾌감을 느끼는 건 까마귀 전부이다. 따라서 백로의 입장에서는 까마귀들이 노는 곳에 끼어봐짜 하등 좋을 것이 없는 것이다. 이들은 면전에서는 백로의 순수를 찬양하겠지만 뒤에서는 그 순수를 거짓으로 취급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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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0 13:55

문뜩 떠오른 헛생각

골프를 치다 벼락을 맞을 확률 혹은 로또를 연속으로 2번 맞을 확률의 인간 광우병에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노출될 것이라 생각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과, 현재 성적과는 관계없이 자기 자식만은 특목고와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심리는 동일선상에 있는 것일까?
한국사회의 지독한 가족중심주의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수도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문뜩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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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7 07:00

관계에 대한 잡문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큰 상처를 주는 것은 사람이지만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역시 사람이다.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 모든 학문과 예술은 고색창연한 지적유희 혹은 유미주의로 귀결되며 그것은 아마 본질적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에서 인간 관계는 본질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관계' 에 대하여 다시 성찰할 필요가 있다. 칸트의 저 유명한 정언명제와 예수의 황금률은 모두가 모두를 이용하는, 소외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현대사회에서는 책 속의 도덕일 따름이다. 타인을 수단으로 대하지 않고,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대로 대하는 것에 대한 반응은 철저히 타산적이다.

 이 타산은 물질적 이해관계가 아니다. 감정마저 손익분기를 계산하는 인간의 영악함은 인간관계마저 철저히 자본의 법칙에 의해 움직이게 만든다. 모든 관계는 자신의 감정적 효용-일종의 감정 자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을 극대화 시키기 위하여 존재하게 되며, 타인 역시 총체적 인격체가 아니라 각 상황에 따라 자신의 효용을 증대 시켜주는, 상황마다 분절된 존재로서만 존재하게 된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탈인격화 하여 자본에 판매하고, 자본 역시 탈인격화된 노동을 원한다. 그리하여 노동자는 개인의 인격과 교양은 무시된채, '노동력' 으로서만 존재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신화화된 사랑의 대상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은 A 자체가 아닌, '재미있는' A 혹은 '잘웃는' A가 되어 '소비' 된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는 동일인물에 대해 앞에서는 다정하게 대하며 뒤에서 칼을 찌르는 행위는 결코 형용모순이 아니다. 타인은 총체적 인격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눈 앞에 존재하는, 현재의 무료함을 없애주는 존재와 제 3자와의 대화속에 나온 그 존재는 별개의 존재가 된다.

 그리고 이 안에서 감정의 효용은 극대화된다. 총체적 수용, 총체적 거부의 Dead or alive 게임에서 벗어나 취할 부분은 취하고 버릴 부분은 버리는(그리고 '버리는 행위' 에서는 '뒷담화' 의 카타르시스로 인한 효용을 얻을 수 있다) 전략은 감정의 효용을 극대화 시킬 수 있다. 아마 '감정 노동' 이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노동력의 재생산에만 기여하던 개인의 인격마저 노동력이 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모두가 알면서도 묵인하는 숨막히는 관계의 게임 속에서 '착한' 행위자는 좋은 먹잇감이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늑대의 가면을 쓴다. 그리고 사냥에 나서는 순간, 우리는 게임의 플레이어이자 동시에 설계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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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9 16:27

과격 폭력 진압 관련 대정부 단독담화문

우선 원본 대국민 '협박문' 부터 감상을 하자.

http://www.frontiertimes.co.kr/news_view.html?s=FR01&no=28791&s_id=9&ss_id=0

자작 대정부 단독담화문

존경이 되지 않는 2MB 일당들!

어제 저녁, 또 다시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과격 폭력 진압이 벌어져 시민과 경찰 양쪽에서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일부 전경이 곤봉과 방패로 시민들을 무차별 폭행하고 빈 소화기통과 보도블럭까지 시민들에게 던져댔다. 나아가 쓰러진 여성을 발로 마구 밟는 일까지 발생했다. 참으로 걱정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이러한 불상사가 발생한 데 대해 깊은 분노의 뜻을 표하며,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끌려나와 부상을 당한 전의경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시민들은 그 동안 최대한 평화적인 방법으로 재협상을 주장하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한때 2MB는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경청하는 척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부의 태도 역시 2MB의 사과문과는 상당히 달라지고 있다. 쇠고기 문제 뿐만이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위험한 정책들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강행하려 하고 있다. 경찰의 진압 양상도 날이 갈수록 과격 폭력화 되고 있다.

또한 한나라당은 오늘 일요일, 개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정치적 성명을 발표하고,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가기 위한 후안무치한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친애하고 싶지 않은 2MB 일당들!

그 동안 시민들은 정부에 대해 정부의 자정능력을 믿는다는 차원에서 평화적인 집회를 위해 노력하며 인내를 갖고 정권퇴진 운동을 최대한 자제해 왔다.

그러나 잠시 고개를 숙였던 정부가 고소영 강부자 주도의 MB노믹스의 강행, 80년대식 진압을 다시 꺼내들면서 급기야 어젯밤과 같은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이러한 사태가 재발한다면, 시위에 참여한 일반시민들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사태는 절대로 막아야 한다. 시민들로서는 불법 폭력 과격 진압에 의한 불행한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불가피하게 소화전을 이용하는 등 정당방위 차원의 자위책을 강구할 수 밖에 없다.

또한 과격 폭력진압을 조장 선동하거나 극력 폭력행위자에 대해서는 끝까지 기록, 추적해 국민의 심판을 내릴 방침이다. 파괴된 방송장비 등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는 민사상의 손해배상도 청구하겠다. 아울러, 한나라당의 망발에 대해서도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다.

2MB 일당들!

이번 시위와 관련해 전의경들의 부모이자 친구인 시민들이 밤낮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젯밤에도 수백명이 넘는 시민들이 부상을 당했고, 이 중 상당수가 중상을 입었다.

지금까지 부상당한 시민들은 총 천여명에 달하고 있다. 10개가 넘는 농성천막과 140여 점의 농성장비도 파손됐다.

2MB의 집권이 네 달이나 계속되면서 자영업은 물론 우리 경제 전체에도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다. 국가신인도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외국 투자자와 관광객들도 발길을 돌리고 있다.

전 세계가 유가급등으로 위기에 몰려있고, 특히 우리 경제도 어려운 상황에서 2MB가 대통령으로 있을 경우 누가 우리나라에 믿고 투자하겠습니까?

2MB의 집권은 서민경제를 죽이는 일이고, 그 피해는 묵묵하게 일하고 있는 대다수 시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더구나 이런 현실은 아직까지도 시민들께 정확히 전달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때일수록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균형있는 보도가 필요하다. 정확한 정보들이 시민들께 전달될 수 있도록 조중동의 회개를 당부드린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는 시민들의 고충에도 관심을 갖고 보도해 주실 것을 거듭 요청드린다.

또한 한나라당도 개념없는 성명서를 철회하고, 미 쇠고기 재협상을 즉각 당론으로 정하기 바란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민의를 대변하여야 할 국회의원들 중 일부가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친애하고 싶지 않은 2MB 일당들!

이제는 우리 모두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발전 시키는 데 역량을 모아나가야 할 때다. 국민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가운데 정책을 수행하는 성숙한 국가 운영역량을 보여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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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7 01:13

2MB 요정설에 대한 신뢰도 대폭 증가

-2MB 요정설이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예전에 쓴 글(2MB 탄핵에 대한 단상)에 나타나 있다시피 나는 5월 초만 하더라도 촛불문화제의 가능성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었다. 대운하나 공공부분 민영화 등 한국의 중장기적 사회경제적 체제 자체를 뒤엎을 수 있는, 산적한 거대 이슈들을 놓아두고 그 확률도 매우 미미한 광우병 이슈에 들불처럼 일어나는 대중을 보며 어느정도는 냉소를 보내었던 것도 사실이다.

 대선을 거쳐 4월달의 총선 패배를 겪고 나니-게다가 내가 선거운동을 뛰었던 후보 사무실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패배를 목도하였다- 한국의 대중에 대한 실망과 불신감이 팽배해 있던 시기였다는 말로 미약한 변명을 해본다.

 여하튼, 내가 미심쩍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촛불문화제에 모인 시민들은 나에게 멋지게 어퍼컷을 날렸고, 나는 5월 2일 이후로 꾸준히 촛불문화제와 가두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기말고사와 논문을 쓰느라 바뻐 촛불시위 출석이 뜸해진 요새 와서 생각해보건데 2MB 요정설은 통찰력이 있는 주장인 것 같다.

 기억해보자. 촛불이 시들할때마다 여기에 불을 부은 것은 시민들의 열정과 아이디어 이전에 2MB 의 삽질이었다. 지속적으로 부어주는 배후설과 간간히 터뜨려주는 돌출 발언, 그리고 강경 진압은 그만큼의 강한 반발을 수반하였고 이 반발은 고스란히 촛불의 기름이 되었다.

 촛불시위가 가두로 나올 수 있도록 계속 귀를 막은채 먹사들과 대화하던 2MB는 시위대가 가두로 나와 논란이 될 법한 시기에 25일 신촌의 진압 크리를 날려줌으로 가두시위에 대한 비난여론을 잠재우며 시위대의 상황판단능력 역시 대폭 증가시켜 주었다.

 그리고 6월 1일, 피의 일요일은 2MB가 국민의 정치의식을 일깨우고 함양시키기 위한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깨달은, 절대정신의 각성 기념일로 지정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의 '지령' 이 떨어지자마자 아고라의 노빠들이 청와대 진격 무용설을 주장하기 시작하였는데, 최소한 그 전까지는 청와대 진격이라는 행위의 부적절성보다는 경찰의 폭력진압이 주요 이슈였다.

 또한 촛불의 중요한 고비였던 6월 7일 저녁, 프락치 논란까지 있던 폭력사태에 대한 목소리가 일파만파 확산되기 시작하여 6월 10일 시위의 성공 여부가 불투명해지던 시기에 2MB는 명박산성이라는 기상천외한 아이템으로 벼락치기 인력동원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아마 명박산성을 보고 온 사람들이 최소한 몇만명은 될게다. 명박산성과 더불어 81년생 북파공작원이 존재하는 가짜 HID 는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내는 데에 톡톡히 기여하였다.

 결국 명박산성의 가호로 6월 10일 시위를 어느정도 성공적으로 치루어내었지만 청와대의 리액션도 미적지근한 데다가 추후의 뚜렷한 목표가 정해지지 않아 지쳐가던 시민들. 하지만 역시 우리의 2MB 요정은 시민들이 지쳐가는 것을 눈뜨고 볼 수가 없어 LPG 가스통과 함께 고엽제 전우회를 여의도에 파견하사 시민들이 오랜만에 운동도 할 겸 운치있게 야경을 보며 한강을 걸어서 건너는 체험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제 곧 장마철이다. 일기예보를 보니 내일부터 비가 온다는데, 비가 내리기 전부터 2MB 요정은 역시 세심한 배려를 해주었다. 오늘은 길고 긴 장마철을 맞이하여 3종 세트이다. 오전에는 김종훈의 옥쇄 크리, 오후에는 이랜드 홈에버(신실한 박성수가 운영하는 그 이랜드 맞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 하지 말지니....)의 쇠고기 원산지 위조 크리, 밤에는 촛불시위 생중계의 메카 아프리카 TV 대표 긴급구속 크리.

 아마 내일 ASEM 회의때 세계 각국의 요인들에게 한국의 위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오늘 하루에 몰아서 일들을 터뜨려 주었나 보다. 대책위 측에서는 2MB에게 20일까지 기한을 주었는데 과연 20일 당일날에는 또 무엇을 하사해 주실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노무현 시절, 민주주의보다 경제성장을 택하였던 괘씸한 시민들에게 몸소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체험시켜주는 2MB 요정의 국가와 시민에 대한 배려와 사랑 앞에서 나와 같은 룸펜은 그저 조용히 그분의 희망에 따라 시위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것 밖에 할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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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0 08:58

결전의 날

 결전의 날, 6월 10일이 밝았다. 3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일어나 학교에 있다가 시위에 참가할 계획인데,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이며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어제 최장집 교수가 인터뷰에서 말했다시피 이 정제되지 않은 열정을 제도화해주고 지속시켜 줄 정당이 부재한 현실에서 통제가 불가능한 에너지 덩어리가 어느쪽으로 흘러갈 것인가.

 일요일의 '폭력시위' 때문에 여론악화를 걱정하였지만 친절하게도 전경은 14세 소년의 뒤통수를 방패로 가격하였고 2MB는 세종로에 컨테이너 공구리를 치고 있다. 5월 초에 간단하게 끝낼 수 있던 문제를 이렇게까지 비화시킨 2MB의 선동능력과 정치력은 이래저래 역사에 남을 듯 하다.

 이 판국에서도 시민사회의 원로들-물론 이들이 '지도자' 는 아니지만-을 만날 생각은 하지 않고 뉴라이트를 위시한 '종교계' 인사들을 만나서 시시덕거리고 있는 것을 보면 금치산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쯤되면 네티즌 중에 몇명 뽑아서 대화하는 제스쳐라도 보여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끝까지 분위기 파악 못하고 부시 형님에게 전화를 걸어 형님이 약속 했다고 광고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당선 전의, 공식 외교라인이 아닌 종교계 인맥을 통한 부시와의 면담 추진이 떠오른다. 계엄령 직전의 갑호경계령도 내렸다던데, 사태를 치킨게임으로 만들지 못해 안달이 난 것 같다.

 다시 오늘의 과제. 컨테이너 성이 쌓인 세종로에서 우리는 공성전을 할 것인가, 축제를 할 것인가, 이합집산을 할 것인가. 내가 고민한다고 해봐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니 논문이나 쓰다가 저녁에 속편하게 가서 시민들의 흐름에 몸을 맡겨야겠다.

 그리고 내일, 세상은 바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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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8 22:51

'폭력시위' 에 대한 일련의 반응에 대한 단상

고고한 척 깔끔떨고 뒷짐지고 있으면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릴 일도 없을 것이며 고뇌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자기기만 속에서 완결된 자신의 세계가 깨지지 않는 것은 아마 정말 속편할 것이다.

하지만 루쉰은 말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울지라도 한줌의 빛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그래야 언젠가는 빛을 찾아 밖으로 나갈 수가 있기에.

'촛불문화제' 까지는 정말 고민없이 나올 수 있었다. 전경이 연행을 하지도 않았고 소라광장에 모여 콘서트와 자유발언을 보며 가볍게 2MB를 씹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촛불시위' 가 된 이후로, 그리고 8일 쇠파이프가 등장한 이후로 빠져나가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빠져나가겠다는 '나약함'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강자들만이 투쟁할 수 있는 세상의 구조 자체가 문제일 게다.

그렇지만 자신의 '나약함' 을 수용하거나 인정하지 못한채 거기에 온갖 '멋진' 미사여구-이성, 합리성, 평화-를 가져다 붙이는 것은 그리 좋은 눈으로 바라보기가 힘들다.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히 생각해보자. 나를 진정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가. 모두가 근본적 비폭력을 주장하는 탈근대 전사들인가? 그런 사람들이 이라크 파병할때는 뭘 하고 있었나.

폭력사태가 여론에 미치는 영향을 걱정하는 것과 폭력을 긍정하지 않더라도 시위에 계속 참여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시위의 '순수성' 운운하며 빠지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짜증이 난다.

애초에 민의의 본질이란 것이 있던가? 시민과 운동권의 낡은 이분법에 갇힌 채 자신들의 안전한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자위에는 근거없는 감정적 혐오 이상의 이유가 없다. 생각해보자. '전문 운동권' 들이 작정하고 폭력투쟁 하려고 마음먹고 나왔으면 7일 새벽에 이미 모든 전경버스가 박살났을게다.

자신들이 이미 통합의 제의에 혹해서 참여하였다면, 돌출적으로 나오는 폭력마저도 어떤 방식으로든-말리든 부추기든- 포용할 필요가 있다. 미안하지만 평생 그런식으로 헤게모니에 영합하며 자신의 세계를 부수지 않은채 도피를 하다간 '이성' 의 정점에 오를 수가 없다.

폭력투쟁을 긍정하라는 말이 아니다. 여론에 미치는 영향은 그것대로 고민하고 시위의 대의는 그것대로 고민하고 좀 전략적으로 사고하라는 말이다. '냉철한 이성' 좋아하는 분들이 가장 감정이고 당위적으로 판단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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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6 03:35

노파심

소위 메이저캠들이 단체로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8, 90년대의 악습이 반복될 조짐이 보여서 걱정된다. 선도투를 이끄는 서울대와 자신들만의 응원문화로 결속하는 연대와 고대, 그리고 역시 강한 결속력을 자랑하는 이대.응원가를 개사하여 새로운 시대의 민중가요로 만드는 것까지는 바람직 하지만 응원행위 자체가 집회장의 놀이가 되어서는 안된다.

오늘 집회에 참석하여 계속 느낀 불편한 감정의 정체는 이것이였다. 나 역시 메이저캠 소속이긴 하지만 자신들끼리 몰려다니며 타 학교 학생들이 이질감을 느낄 수 있는 응원문화를 반복하는 것은 '영 아니올시다' 이다. 정 그 자리에서도 응원을 하고 싶으면 응원가를 좀 더 그럴듯하게 개사해와서 부르길 추천한다.

여하튼 대학생들이 본격적으로 판에 끼면서 깃발의 숫자도 대폭 늘어났는데 걱정이다. 시위의 '순수한' 목적이 '변질' 되는 것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시위의 대의는 지금까지 계속 자체적으로 진화하여 왔다. 문제는 깃발에 속할 곳이 없는 일반 시민들의 소외와 비메이저캠들의 소외감이다.

대오는 서울대가 지도하고 노래는 연고대가, 구호는 이대가 담당하면 시위할 맛이 나겠는가? 물론 이것은 응원문화와 같은 전체주의 문화에 심한 알레르기가 있는 본인의 편견이 심하게 작용한 기우에 불과할 뿐이다. 아니, 기우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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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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